24 아이스크림 케이크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눈앞에 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여러 번 그렸다. 과연 나는 참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잔칫상과 같은 풍경이 눈앞에 차려진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일이 줄줄이 있는 달이라 분명 마음속으로 대비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벌렁대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 안 먹을 수도 없고 어떡하지.
그런데 괜한 걱정이었다. 밤중이라 어머님은 몇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 하였고, 남편의 누이도 찬 아이스림을 못 먹겠다며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나는 핑크 숟가락을 하나 들고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주고난 뒤, 내 숟가락에 붙은 크림의 흔적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먹을까 말까. 고민할게 무언가 안 먹으면 된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선 갈등이 계속되었다.
남편은 대표가 되어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자르기 바빴다. 손잡이가 긴 두툼한 스테인리스 뒤집개를 든 남편은 전사와 같았다. 아이들은 참새 새끼들처럼 핑크 숟가락을 하나씩 들고 받아먹기 바빴다. 모두 바쁜 와중이라 내가 먹는지 안 먹는지는 신경을 안 썼다.
“나 너무 배가 불러. ”
집에 와서 그 한 마디를 했더니, 아이스크림을 먹어서 그렇다는 거다.
나는 숟가락에 붙은 크림 한 번 핥아먹었을 뿐인데. 내가 먹는지 안 먹는지 알지도 못하다니, 그건 그것대로 좀 서운하다.
야식은 안 먹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생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속의 고초는 계속될 것 같다.
야식을 참는 건 유혹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는 일이다. 더불어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 먹는 음식은 사회적인 관계를 고려해야 할 수밖에 없다.
곧 남편의 생일이다. 가족 모두 모이는 시간은 밤 10시가 될 것이 뻔하다. 예외를 둘 것인가, 분명하게 야식을 안 먹는다고 말할 것인가. 특별한 날 모두가 모이는 자리에서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나는 혼자가 아닌 것이 분명하니까, 언제든 야밤에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잔칫상이 펼쳐질 수 있음을 기억하자. 특별한 날이 좀 많던가.
생일 케이크는 숟가락에 붙은 크림 한 번만 맛보았는데 손가락이 붓고 얼굴이 붓고 배가 팅팅 불었다. 아이스크림으로 뇌가 가득 차서 그런가? 상상의 배부름일까? 가스가 가득 차서 더부룩한 것이 영 불편하다.
야식을 안 먹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밤중의 일일 뿐이다.
바쁜 출근 시간, 가방 하나에 간식을 챙겼다. 밤중에 아이들만 챙겨 먹고 나는 못 먹은 과자와 과일, 초콜릿을 잔뜩 챙겼다. 그리고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야금야금 먹었다. 과자 반 봉을 먹었고, 초콜릿 서너 개를 먹었다.
밥은 며칠 짜고 매콤한 것을 챙겨 먹었다. 야식으로 먹을만한 음식으로 챙겨 먹었다. 며칠 동안 피자, 치킨, 떡볶이 메뉴에 포함시켰다.
야식 대신, 야식을 못 먹으니까,라는 보상 심리를 버려야 한다.
식탐이 많은 내게 그게 가능할까.
오늘은 뷔페에 간다. 뷔페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먹을 때도 무지 배부르고 행복하다. 그러나 종국에는 후회하는 곳이다.
탐욕을 내려놓아야만 야식 참기를 제대로 이루는 게 아닐까. 그냥 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먹고 싶다’가 아니라 진정 내가 먹고 싶은 것이 무언지 생각해 봐야겠다. 배부름이 나를 만족시키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기를 바란다, 나야.
배가 부른 만큼 체중은 올라간다. 올라갔다. 슬픈 현실이다.
먹어서 행복하고, 먹고 나서 후회한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야식을 참는 건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내 인생을 통틀어 음식에 대해 다시 정의하고, 먹는 행위에 대한 인식을 새로 각인시키는 일일 지도 모르겠다.
<야식을 참아라, 딱 100일만>은 초등 딸아이 복실이와 함께하는 야식참기 프로젝트입니다.
그러고보니 복실이는 아이스크림을 아무 거리낌 없이 먹었다. 내가 정한 기준이 너무 빡빡한 건 아닐까? 복실이는 우리집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야식을 안 먹는다. 좋겠다.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