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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n 20. 2024

10년 지기 쇼케이스를 떠나보내며

쇼케이스가 고장 났다. 더위를 먹었나? 냉장 온도가 천천히 올라간다.


10년 세월을 함께하며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으니 힘들기도 했겠지. 녀석도 많이 늙었나 보다. 쇼케이스의  나이를 헤아린다는 것이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기계도 연식을 따진다. 3년 전 고장으로 맡겼던 수리점에 전화를 하니 토요일 아침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내가 전화를 한 것은 아니고 조바심이 난 것은 남편 사장이다. 토요일까지 내부를 비워두고 수리를 맡기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남편 사장은 당장 작동을 원한다.


평소 기계에 관심이 많고 예비 기계까지 준비를 하는 남편 사장은 중고 쇼케이스를 눈여겨보고 있었나 보다. 당근에서 당장 살 수 있는 중고 물건을 골라 열심히 채팅을 한다.


1층에서 1층으로.  리프트가 있는 용달화물까지 알아보고 빠르게 가져오기로 했다. 그런데 마지막 채팅 문장에서 막혀 버리고 말았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이란다. 차 키를 들고 출발하려다 도로 제자리다. 가게에 있는 쇼케이스는 200킬로그램이 넘는다. 가져오려고 했던 물건은 120킬로그램. 기존 쇼케이스보다는 작고 가볍지만 결코 2층에서 사람의 힘으로 들고 내려올 수 없다. 사다리차를 불러야 하나? 사다리차 가격이 얼마야 대체?


또 다른 거래를 위해 핸드폰과 씨름을 하더니 가방을 챙겨 휑하니 나간다. 12시가 되기 2분 전 남편이 돌아왔다. 트럭 짐칸에 중고지만 새것 같은 깜장 쇼케이스가 실려있다. 점심 장사 시간 맞추느라 얼마나 달렸을까.


새로 들인 쇼케이스도 무게가 만만치 않다. 실을 땐 남자 넷이서 겨우 들었다고 한다. 바퀴가 달려 있어 데크 테라스까지만 무사히 데려오면 되는데 사람의 힘으로 온전히 들어야 한다. 힘 못 쓰는 허약이 부인은 거들떠도 안 보고 옆 집 구둣방 사장님께 부탁하러 간다. 흔쾌히 힘을 보태주러 오신 사장님, 감사합니다. 힘쓰는 법을 아는 분이다. 120킬로그램 쇼케이스를 둘이서 번쩍은 아니고 살짝 들어 무사히 데크에 안착시켰다. 그 후로는 바퀴로 굴리고 들어간다. 힘이 장사다.


10년을 한 자리에서 열심히 일한 너. 강렬한 불빛을 밝히며 은빛 찬란함을 뽐내던 너의 회색 콘센트를 뽑았다. 미안함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고 네 빈자리에 남겨진 수북한 먼지가 날릴까 얼른 청소기를 돌렸다. 네 빈자리에 떨어진 많은 주문서 종잇조각을 빗자루로 쓸어 쓰레받기에 담았다. 새로운 녀석에게 네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너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있었을까. 일을 멈춘 너를 달래주기를 바란 건 아니겠지? 너는 쉽게도 바퀴를 굴러 테라스 귀퉁이에 잠시 버려졌다. 고물상을 하는 할아버지가 곧 오실 테다.


너를 할아버지의 리프트가 달린 트럭에 실었다. 200킬로그램도 장정 둘이서 거뜬히 실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기계의 힘이다. 힘을 내준 트럭 주인 할아버지께 시원한 오미자를 내드렸다. 트럭도, 단번에 달려와 주신 아는 할아버지도 고맙다.




일하기를 멈추고 고물상 트럭을 타고 떠나간다. 뜨거운 태양과 무겁고 습한 바람을 맞으며 쇼케이스야 넌 가는구나. 자유를 만끽한 듯 도로를 달릴 적에는 기분이 날아갈 것이다. 그 길이 고물상으로 가는 길인 줄은 알까 너는?


나이가 든다는 건

그저 몸이 고장이 나는 것일까.

스스로 일하기를 멈추고 싶은 걸까.

고치기를 포기하고 버려지는 것일까.


아프기 전에 미리 알람을 주지 그랬니. 신호도 없이 너는 하루아침에 장사를 망칠뻔 했잖니. 사나흘 기다렸으면 더 좋으련만 먹고 살려니 어쩌겠니. 너를 고치지 않고 보내서 원망스럽니? 새로 온 깜찍한 깜장 쇼케이스에 네가 품고 있던 수제청과 케이크를 예쁘장하게 진열해 놓았단다. 나이 들어 골골골 대던 시끄러운 소리도 없고 젊으니 쌩쌩한 것 같아. 단지 좀 작은 것이 하나 흠이구나.


십년지기 친구를 보내는 마음으로 너를 비워내고 나니 휑한 주방이 뻥 뚫린 것 같다. 새로 온 깜장 쇼케이스 녀석이 작아서 옆에 진열장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는구나. 너의 듬직한 어깨가 생각나는구나.


그러나 오늘이 지나면 네가 생각이나 날까?



나는 한때 은빛 찬란했던 쇼케이스였다.

쓸모를 다한 나의 처지가 가련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쓸모란 한 순간에 없어질 수도 있는 것이구나.

한 순간에 버려질 수도 있는 것이구나.

잠시의 휴식이 영원한 휴식을 가져올 수도 있구나.

그것은 영원한 이별이 될 수도 있는 한나절의 휴식이었건만,

기다림도 없이 바람도 없이 희망도 없이 그저 그렇게 흘러가 버리는 것이구나.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선택이 아닌 것이구나.

쓸모를 다한다는 것은 내 자리를 비워주고 떠나야 함이라.

쇼를 마치고 돌아서서 낡은 트럭을 타고 밧줄에 묶인채 마지막 자유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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