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초록 풀밭을 돌리도

by 눈항아리


며칠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며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불편했다. 그날은 해가 반짝하니 팔도 어깨도 뜨거웠다. 뜨거운 오후의 공기를 가르고 그날도 4시가 좀 안 되는 시간에 부부가 방문했다.


70대 노부부는 매일 오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매일 단골은 얼굴도 메뉴도 익숙하다. 한두 마디 건네는 게 쉬운데 이 부부에게는 좀 어렵다. 부인은 다소곳하고 남편은 부인에게 친절하다. 그녀는 말없이 따뜻한 커피를 두 손 모아 마신다. 가느다란 팔과 가녀린 몸매가 매력적이다. 보통 부부가 오면 따로 핸드폰을 보는 게 일반적인데 부부의 모습은 참 따뜻하다. 그녀가 창가를 손으로 가리키며 작게 소곤소곤 이야기 하자 핸드폰을 보던 그는 탁자에 내려놓고 집중을 하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들은 나의 정원을 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잡초 밭이다. 부부도 초록 풀밭이 마음에 들었을까. 꽃은 없지만 한낮의 싱그러움을 따뜻한 커피와 함께 마시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초록 풀밭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봄철 노란 씀바귀가 가득하던 정원 한 귀퉁이에 강아지풀과 쑥이 자리 잡았다. 쑥쑥 초록이들이 올라오며 바람에 한들거리는 것이 얼마나 예쁜지 지나가다 한 번씩 서서 구경을 한다. 풀이 참 이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 사장은 또 풀 자를 생각을 한다. 그렇구나 내 눈에 풀밭이 이뻐 보일 때가 풀매기를 해야 할 때이로구나. 잡초는 전날 온 비에 물도 가득 머금었겠다. 뜨거운 태양이 좋기만 한가 보다. 오늘은 더욱 싱그럽다.


부부는 같은 시선으로 우거진 밀림과 같은 초록 풀밭을 보고 있다. 창문 크기와 딱 맞아떨어지는 초록 풀밭 정원이 보이는 곳이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지저분하다고 할까? 개중에 어떤 손님은 자신을 정원 관리인으로 쓰라며 농을 하기도 한다. 귀신같이 우거져 관리가 안 될 때면 깔끔하신 분들은 성에 안 차는가 보다. 그래도 창가의 노부부는 밖을 보며 한참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봐서 마음에 드는 것 같다. 그녀가 매일 입는 너르고 환한 풀치마와 어울리는 풀밭이다.


그녀처럼 다소곳하다면 나도 노년에 매일 한 잔의 커피를 그와 함께 마실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 박력 부인인 것 같다. 박력이 넘치는 활달한 부인들은 60대 70대에도 남편과 함께 오지 않는다. 그녀들은 친구들을 동반하여 한껏 들뜬 기분으로 우르르 몰려와 수다풀이를 하고 간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모른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우르르 몰려다닐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떤 노년의 모습을 원하는 것일까. 좀 다소곳하게 목소리를 낮춰볼까. 기다란 풀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사뿐사뿐?


그냥 생긴 대로 살자. 성큼성큼.



무화과나무 아래도 초록 풀이 무성하게 올라온다. 민트와 잡풀이 어우러져 뒷마당 정원을 다 덮었다. 너무 예쁘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 사장이 뒷마당도 예초기로 날려버린다고 예고를 했다.


마당에는 내리쬐는 여름 태양에도 민트와 국화, 쑥과 잡초가 어우러진 풀밭이 싱그럽다. 카페 손님들 하나 둘 차에서 내려 민트를 손으로 쓸어보고 향기를 맡으며 들어온다. 진딧물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짓궂은 안주인의 말에 기겁을 한다. 가끔 어떤 손님은 뜯어달라기도 하고 뿌리를 파 달라고 하기도 한다. 민트 잎을 빠르게 이발해 물 담은 투명 플라스틱 통에 꽂아 준다. 보도블록 틈새로 뻗어가는 작은 줄기를 서넛 뜯어 주기도 한다. 귀찮으면 뒷마당 것을 파가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도 초록 아이들은 꿋꿋하고 싱그럽다.



남편 사장이 아침부터 바쁜 척을 하더니 풀정리를 했다. 내가 애정하는 풀밭이 처참하게 변했다. 칼날로 쳤으면 그나마 덜 할 텐데 남편사장은 연한 줄기라며 가게 마당은 꼭 플라스틱 줄로 된 날을 이용한다. 플라스틱 줄이 빠르게 돌며 줄기를 쳐내는 것인데 쥐 파먹은 모양처럼 지저분해진다. 며칠 지나고 풀이 올라와 자리를 잡으면 괜찮아지지만 그때까지 그것을 보며 속으로 구시렁거릴 내 정신 건강이 문제다. 그러나 잡초를 내 손으로 뿌리 뽑을 것도 아니고 한 번씩 잘라주면 또 볼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야 할지도 모른다.


강아지풀과 쑥이 가득하던 풀밭이 몽땅 잘려 나갔다. 흙이 보인다. 봄이면 무스카리도 올라오고, 수선화도 심어놨었는데... 지난해 산속에 핀 방울꽃을 옮겨다 심기도 했는데... 꽃도 풀도 구분 못하는 남편 사장.


정면 데크를 배경으로 가지런히 올라오는 민트와 국화는 어쩌지 못하고 잡초라 여겨지는 것만 몽땅 잘라놨다. 이 빠진 모양이 불쌍타. 내 이런 사달이 날 줄을 알았다. 날도 더운데 앉은뱅이 엉덩이 바퀴 의자를 끌고 가위 들고 오후에는 나가야 할까. 뜨겁던데 내일 나갈까.


뒷마당 무화과나무 아래는 그나마 멀쩡하다. 모두 한꺼번에 잘라서 휑하다. 까까머리로 벌초한 느낌이다. 전문 농부의 예초기 솜씨 같다.


나무만 좋아하는 남편 사장. 각성하라 각성하라! 풀도 쫌, 꽃도 쫌 기억해 주라!


여름 마당은 전쟁이다. 전쟁터는 오늘도 후끈하다. 열기가 가득한 그곳에 살아남은 초록 녀석들만이

파릇하다. 옆 친구가 쓰러져도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그들. 그들의 초록이 아름답다. 남편 사장! 내 초록 풀밭을 돌리도!



창가 자리에서 보이는 강아지풀, 쑥이 자라는 초록 풀밭
강아지풀과 쑥이 사라진 풀밭// 내 풀!!
강아지풀, 쑥이 있던 자리, 봄에 피었던 무스카리


무화과 나무 아래 풀밭 // 전
무화과 나무 아래 풀밭 // 후 // 내 풀!!
잡초만 잘려나간 그곳. 이가 쏙 빠졌다. 쥐가 파먹었다. ㅠㅠ



초록 풀을 좋아한다. 2023년 어느 산책길 초록 플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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