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자란다

by 눈항아리

어수선한 마당에도 나무가 산다. 나무는 정해진 키 높이 이상 자라지 않는다. 나무 모양을 잡는다며 줄기째 잘라서 그렇다. 나뭇잎도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모양으로 관리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 세월 함께한 나무는 키도 모양도 한결같다. 낮은 담장 안을 둘러 가며 선 그들은 어수선한 마당을 호위하고 있다. 변함이 없이 그들의 그늘 아래에 있는 모두를 품에 안고 지키고 있는 듯하다.


창가에서 보는 정원의 나무는 움직이지 않는 그림 같다. 매일 같은 모습으로 창을 장식해 주는 그림. 창문이라는 도화지에 새겨져 있는 배경 같은 풍경. 나무가 움직일 때라고는 바람이 불 때뿐이다. 풀이 눕는 강한 바람에도 나무는 굳센 나무 둥치를 움직이지 않는다. 느릿한 노래를 하며 함께하는 이들과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서서 고개와 상체를 살살 좌우로 움직이는 것은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다. 나무가 그들의 옆에 선 나무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리듬을 탄다 생각해 보라. 내 몸통보다 가는 그들의 몸체가 바람에 흔들린다면 꽤 볼만할 것 같다. 그들은 그저 가느다란 곁가지를 위아래로 흔들뿐이다.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딱까딱하는 수준이다. 세찬 바람이 불어도 마찬가지다. 좀 더 세게 위아래로 흔든다. 잎이 커다란 목련나무 만이 모든 나뭇잎을 요란하게도 팔랑거린다.


누구도 중심을 움직이는 법이 없다. 뿌리를 굳건히 땅 속에 박아 넣고 나무 기둥은 움직이지 않는다. 거칠한 조각상 같다. 생각하는 사람 ‘로뎅’과 같이 ‘생각하는 나무’ 녀석.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걸까. 하루 온종일, 어제도, 오늘도, 매일 같이... 그들의 시간은 내 시간의 흐름과는 다르리라. 입구의 그 녀석은 더 가녀린 몸매를 가졌는데 쉬지 않고 잔가지를 흔든다. 다른 녀석들보다 어린 나무일까? 시간의 묵직함을 견디지 못해 조바심이 난 걸까. 아니면 긴 생각 끝에 바람에 실어 나무의 언어를 전하는 걸까. 그건 그들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바람에 실려오는 그들의 언어를 누군가는 들을지도 모른다. 나무가 말하는 것을 들어봤는가. 가만히 그들의 소리를 들어 보라. 잎사귀의 팔랑거림이 바람을 타고 날아온다. 생가지 부대끼는 냄새, 잎사귀의 청량한 향이 바람에 실려와 내게 말을 건다.


나무가 말만 할까,
걷기도 한다.


우리가 땅 위를 걷는 것처럼 나무는 하늘을 향해 걷는다. 그리고 땅 깊은 곳을 향해 걷는다. 그것은 느릿하지만 우리의 걸음이 금방 흩어지고 마는 발자국을 남기는데 반해 나무는 자신이 직접 길을 만들어 위로, 아래로 움직인다. 움직이는 방향이 우리와 다른 그들이다. 누가 동물과 식물을 나누었던가. 누가 방향을 나누었던가.


매일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내 발걸음은 이곳 어수선한 마당 한 구석에 묶여 있다. 그래도 꺾이지 않고 나의 바람이 향하는 곳으로 마음을 다해 달린다. 나무도 그렇다. 매번 잘려나가는 그들의 가지와 잎새를 눈물을 머금고 떨군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쭉쭉 뻗어 나간다. 땅을 향해 최선을 다해 뿌리를 뻗어간다.


그 와중에도 새의 놀이터가 되고, 벌레에게 삶의 터전이 되어준다. 작은 나무와 풀꽃의 그늘이 되어주고 마당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준다.


어깨 동무한 그들은 20년 지기 친구들이다.


함께 있어 더 든든한 그들.


그들도 꿈이 있다.

그들도 하늘을 좋아한다.

그들도 봄을 바란다.

그들도 연둣빛 싹을 틔운다.

그들도 꽃을 피운다.

그들도 바람을 좋아한다.

그들도 매일 자란다.


나도 그렇다.


어수선한 마당/ 나무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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