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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가 이발을 하러 간다

by 눈항아리

복이가 이발을 하러 간다고 한다. 혼자 간다.


달복이도 이발을 하러 간다. 엄마랑 손잡고 간다.


복이는 달복이가 아니꼬운가 보다. 4학년이 혼자 머리도 못 자르냐고 그런다. 혼자 다 알아서 했던 자신의 초등 시절이 생각나나 보다. 4학년 때는 저도 엄마 손을 잡고 갔었던 것 같은데, 기억에 없는 것일까.

복이는 돈을 받아 혼자 훌쩍 나갔다.


달복이와 손을 잡고 동네 이발소를 찾았다. 나이 느긋하게 잡수신 어르신이 하는 이발소다. 그림도 그리고, 도장도 파고, 선풍기도 고치는 만능 이발소다. 이발소에 온 이유는 하나. 예약을 안 해도 된다.


숱하게 많은 미용실은 하나같이 예약을 받아서 운영한다. 미리 전화를 하지 않고 가면 찬밥 신세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예약 손님 머리 끝나기를 기다리면 운이 좋은 것이고 짧게 거절의 말을 듣기 일쑤다. 남자아이 둘을 머리 자르러 데리고 들어가면 안 받아 주는 미용실이 태반이다. 골목을 돌며 서너 번 거절을 받으니 다음번에는 미용실 갈 용기가 안 났다. 넷을 한꺼번에 데리고 아는 미용실을 찾아갔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한 명씩이 좋다.


낮에 시간은 없고 자투리 시간을 내 아이가 오는 시간에 맞춰 저녁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딱 맞춤으로 예약을 잡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나마 토요일 쉴 적에는 나았다. 요즘은 일요일만 쉰다. 일요일은 미용실도 대부분 쉰다. 아는 미용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아이 넷의 머리가 온전하겠는가. 안 그래도 깎기 싫은 머리는 늘 덥수룩하다. 덥수룩한 것을 좋아하는 줄 아이들은 착각한다. 아니면 진짜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큰 아이 둘은 초등 고학년부터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았다. 혼자 가서 이발을 한다. 주인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그 미용실을 주로 이용한다.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학교 끝나고 간다. 간혹 시간이 촉박하면 학원 하나를 쉬고 알아서 간다.


그날도 그랬다. 중 1 복이는 매일 가는 피아노를 쉬고 머리를 자르러 간다고 했다. 이 녀석이 사춘기가 왔나, 여자친구가 생겨 외모에 관심이 생기나. 이런저런 궁금증을 참고 있었다. 이발을 하고 돌아온 아이는 마음에 안 드는가 보다. 괜찮구먼. 앞짱구에 머리통이 커서 다루기 힘들 것이다. 상위 3프로에 해당하는 머리. 어릴 적 건강검진에서 의사 선생님이 인정한 대 머리 아니던가. 미용사의 곤혹스러움을 이해하여라.



머리가 눈을 가릴 때까지 머리를 안 자른다고 버티던 아이다. 요즘은 아침에 머리 정돈도 하고 머리가 눌린 곳은 없는지 떡진 곳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너 여자친구 생긴 거 아니야?”라는 아빠의 물음에 예전 같으면 없다고 화를 내거나 내 빼거나 했을 텐데, ”나도 있으면 좋겠다고요! “라고 대답이 바뀌었다.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앞짱구를 폭 덮은 앞머리가 눈을 가리지도 않는데 머리를 자르러 간 것은 한사코 이성에 눈을 떠서 그런 것 때문은 아니라고 한다. 귀여운 녀석. 머리를 자른 이유는 게임할 때 시야 확보가 안 되어서 그런 것이라는 어쭙잖은 이유를 댄다.


귀여운 녀석.

뭐든 귀여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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