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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l 16. 2024

자연농부 작은농부

생강은 까만 천막을 뒤집어썼다. 해가 쨍쨍할 때 순이 타 버릴까 봐 강한 해를 싫어하는 생강이를 위해 농부 아빠가 씌워줬다. 까만 양산이 며칠 땡볕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 중에 비가 내렸다. 며칠 보슬비가 내리더니 강수량이 제법 있던 날 구멍 뚫린 까만 천막이 축 쳐졌다. 어느 날  아침 나가보니 빗물이 너울지는 검은 파도가 되어 생강을 덮쳤다. 생강 순이 부러졌다. 팽팽하게 당겨 차양막을 쳤건만 빗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나 보다. 농부 아빠가 처음 설치해 보는 차양막이라 좀 허술하게 묶어서 그런 건가. 바람이 세게 불면 날아갈까 걱정했더니 설마 생강을 덮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 오기 전에는 멀쩡했는데 비 때문이다.


비는 무겁다.


태양이 말려주면 곡선의 기울기가 작아졌다, 다시  비를 뿌리면 기울기가 가팔라진다. 간밤에 보슬비에도 차양막이 늘어졌다. 본격적인 거센 비는 오지도 않았는데 농부 아빠는 애가 마르다. 인삼밭에 경사지게 차양막을 설치하는 이유가 그 때문일까. 찾아보니 인삼밭 차광막은 가로대도 하나씩 놓여 있다. 뼈대를 잘못 짠 것일까. 처음이라 배우면서 하는 것이라지만 이미 부러진 생강순은 돌이킬 수 없었다. 농부 아빠는 비 오는 날 아침 생강밭에 들어가 까만 천을 힘껏 당겨 다시 맸다. 다시 매도 비가 오면 매 한 가지로 파도가 넘실거린다.


관리하는 작물 크는 소리는 안 들리고 잡초 쑥쑥 자라는 소리만 들린다.  잡초는 여름을 좋아한다. 눅눅하고 따뜻하고 오락가락 비 오고 햇빛 쨍한 여름 날씨. 그들의 세상이다.


풀밭에 파 묻힌 파는 잡초와 구분이 안 되고, 생강 심은 황토흙은 반그늘 아래 초록 군단이 차츰 점령해가고 있으며, 옥수수 밭에는 옥수수를 닮은 연두색 풀이 옥수수와 친구 하자 겨루고 있다. 마지막에 심은 들깨 고랑이 그나마 좀 나은데 들깨 주변에도 작은 풀이 수두룩하게 올라온다.


세상에나!


더욱 기가 찰 일은 올해부터 농사를 짓는 바로 옆 밭이다. 우리 밭의 두세 배는 되어 보이는데 큰 기계들이 들어와 금세 일을 하고 간다. 하루는 덤프트럭이 들어와 산같이 흙을 부었다.  커다란 포클레인이 들어와 평탄화 작업을 하고 금세 밭 모양을 만들었다. 거름을 흩뿌리고 거대 트랙터가 들어와 밭을 갈았다. 중요한 것은 커다란 밭에 작물을 한 가지만 심는다는 것이다. 단일작물! 농부 아낙이 그렇게도 원하던 하나만 심기! 더 더 중요한 사실은 토양 살충제부터 시작해 밭 주변에 제초제를 뿌렸다는 것이다. 바로 옆 우리 밭은 풀밭인데 옆집 커다란 들깨밭은 깨끗한 황토색 흙밭이다. 초록 풀이 없는 황토밭. 심지어 들깨도 우리 보다 먼저 심었다. 약이 좋긴 좋구나. 옆집에는 진짜 농부가 이사를 왔다.


대략 난감한 초록 풀밭


옆집 진짜 농부 보기 부끄럽다.


그래도 우리는 자연 농부다.

초록풀 매고 풀벌레 소리 들으며

엉망진창으로 농사짓는  

작은 농부.


작은 농부는 작은 기쁨을 누린다.

오이, 호박 따먹고 풋고추 따먹는다.

감자 파먹고 상추도 뜯어먹는다.


풀과 자라는 농작물은 뭐 좀 작게 자라도 어쩔 수 없다. 작게 키워 적게 먹을 밖에. 풀을 빨리 매 줘야 하는데 짬이 안 난다. 오락가락 날씨야 다음 주말에는 서늘하게 비 안 오는 날씨로 부탁해.


밭에 자란 풀은 손도 못 대고 잠시 비 멈춘 틈을 타 집 주변 풀을 베었다. 예초기 소리에 놀란 풀들이 강한 풀향을 풍기며 소리를 질러댔고 놀란 벌들이랑 벌레들이 뛰어다녔다.


상추 3회차 / 상추 2회차 /
상추는 비닐하우스에 키운다. 밖에서 키우면 여름 장마에 상추가 다 녹는다. 1회 차 상추대가 올라오고 빳빳해질 때쯤 2회 차 상추를 심었다. 1회 차 상추를 뽑아내고 3회 차 상추를 심었다. 여름 내내 부들부들한 상추를 먹을 거다. 잘할 수 있다! 상추야 부탁해!  

작은 농부네는 여름상추 심어 먹기도 처음이다. 매해 여름마다 금상추가 되어 오로지 뜯어먹자는 일념 하나로 상추에 매일 물을 준다.

상추야 잘 부탁해!
너의 초록을 한 여름 내내 뽐내주렴.


맛있는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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