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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l 23. 2024

엄마 김매기가 뭐야?

오락가락하는 비에도 풀들은 꿋꿋하게 올라온다. 저 푸른 초원은 풀밭인지 생강밭인지, 풀밭인지 깨밭인지, 풀밭인지 옥수수 밭인지 구분이 안 된다. 우리 밭에만 잠자리가 날아다닌다. 뭐 먹을 것이 많나 보다. 풀도 많고 풀 뜯어먹는 작은 벌레도 많고, 작은 벌레 잡아먹는 큰 벌레도 많은가 보다.


주말을 맞아 해가 떴다. 에잇, 일요일도 비가 퍼부으면 잡초 뽑기를 더 미루는 건데. 이런 마음 반. 비가 잠시 그쳐서 다행이다. 저 푸른 초원에 잡초의 기세에 작물들이 다 숨어 버렸네. 안 뽑으면 손대기 힘들어질 텐데 오늘은 다 뽑아버려야지. 이런 마음 반. 딱 반만 뽑고 끝내면 좋겠다. 딱 반은 제초 매트를 깔았으니 반이 맞긴 맞다. 그래도 많다.


아침에 그친 비, 그러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나뭇잎이 죄다 뒤집혀서 팔랑거리고 나무숲과 함께 어울려 춤을 추었다. 고추 서너 개가 부러지고 제일 큰 복수박 몇 개가 뚝 떨어졌다. 생강에게 씌워준 그늘막이는 일부 찢겨 날아갔다. 그래도 대부분 바람을 버티고 이리저리 뒤집히고 흔들리며 들판에 뿌리를 박고 서있다. 초록 잡초와 어울려 즐거이 바람을 탄다. 누가 누구인지 풀들 사이에는 편을 가르거나 우열이 없을 테다. 뻣뻣한 녀석은 뻣뻣한 대로 가녀린 녀석은 유연하게 바람을 맞아 휘어진다. 한참을 바람과 풀, 나무와 숲의 군무를 본다. 창 너머에서 볼 적에는 그건 무대에 올려진 잘 짜인 무용극 같다. 희로애락을 모두 담은 자연의 소곤거림과 외침을 듣고 그들의 몸부림을 구경한다.


나도 바람을 즐기러 간다. 의복을 꼼꼼히 갖추고 밭으로 간다. 회색빛 하늘 까만 구름이 세찬 바람에 빠르게 흘러간다. 펄럭이는 생강밭 차양막 아래 날것의 바람을 맞으며 편안하게 앉았다. 밭에 김을 매러 나왔는데 왜 자리를 펴고 앉으면 이리도 안온한 기분이 들까. 날씨도 좋고 그늘막도 좋고 바람도 좋다. 초록 물결 흘러넘치는 밭도 좋기만 하다.


장비는 늘 한결같다. 호미 한 자루. 앉은뱅이 의자보다 먼저 눈에 띈 바퀴 달린 의자를 가지고 나왔다. 외발 수레 처럼 밭고랑에 놓고 쓰기 딱 좋다. 커다란 앞바퀴와 뒷바퀴가 철커덩거리는 쇠붙이에 연결되어 있다. 오늘은 네가 나의 돗자리로구나.



이제부터 나 홀로 소풍이다.


주말 농사의 묘미는 홀로 일하는 즐거움에 있다. 산과 하늘을 보고 땅과 바람을 느낀다. 간밤에 내린 빗물을 머금은 축축한 흙을 발로 단단히 디딘다. 풀을 손으로 움켜쥐고 당긴다. 서두를 것이 없다. 소풍이란 즐기고 만끽하는 것이다.


봄과 다르게 거름 내가 씻겨 내려간 땅은 초록 풀내음을 품고 있다. 비가 와서 땅이 성글다. 햇볕에 바짝 말라 흙이 식물의 뿌리를 움켜쥐기 전에 얼른 뽑아줘야 한다. 키 작은 푸릇한 풀을 엄지와 검지로 쏙쏙 뽑아낸다. 둘셋을 쥐고 뽑으면 뿌리까지 안 뽑히고 잘리고 만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하나씩 손으로 쏙쏙 뽑는다. 호미는 뭣하고 손으로 뽑을까. 생강 밭에는 호미질을 마구 할 수가 없다. 작은 생강을 호미로 파버릴 수도 있다. 호미로 긁다 땅 속으로 번식해 저만치 멀리에 새로 난 생강순을 발견하지 못하고 잡초와 함께 긁어버리면 큰일이다. 고랑의 잡초는 호미를 쓰고 생강이 자라는 낮은 두둑 위 이랑은 죄다 손으로 뽑는다. 아이고야 내 손이 남아날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살다 살다 손가락으로 잡초 뽑는 날이 온다. 집 앞 정원도 호미로 정리를 할까 말까인데 생강 녀석들 농부 아낙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특별한 오늘을 위해 이 한 손을 바치겠소!!!!


그런데 이 녀석들 뽑는 재미가 있다. 하나씩 집게처럼 뽑아 올리면 뿌리에 흙하나 묻어나지 않고 올라온다. 적나라한 그네들의 풀뿌리가 아득한 땅 속으로부터 농부 아낙의 가녀린 손가락 힘에 딸려 나오니 신기하기만 하다. 땅 위의 선악을 판가름 짓는 신이라도 된 양 의기양양한 손가락에 속도가 붙으면 한 손을 더해 두 손으로 마구 뽑기도 한다. 그러곤 양손 가득 잡초 꽃다발을 들고 혼자 슬며시 웃기도 한다. 홀로 신들린 농부 아낙. 잡초 기계가 따로 없다. 외국 어디에는 레이저로 잡초만 쏘아대며 태워버리는 기계가 있다는데... 농부 아낙의 손은 레이저 잡초 기계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꽤 정확하고 쓸만하다. 이렇게 멋진 순간 잡초 꽃다발을 사진을 찍어주려고 몇 번이나 마음먹었다. 그러려면 장갑을 벗어야 하고 장갑을 벗으면 잡초 꽃다발을 바닥에 내려놓아야 한다. 흙에 놓으면 흩어지고 곧 햇볕에 시들어 버릴 여린 그 녀석들을 놓지 못했다. 잠시라도 그들이 흙으로 돌아감을 손 안에서 고이 애도해 주었다.


생강밭에 여린 풀과 노닐다 보니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 끝으로 집어 올리기가 힘이 들었다. 꾀를 내어 새끼손가락 옆쪽 손 날로 땅을 지지하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뽑아낸다. 나중엔 손으로 풀머리를 잡아 뜯어도 본다. 그럼 여지없이 뽑히지는 않고 뜯겨나가는 얌체들. 손가락은 곱아 가고 오후의 햇살은 뜨거워진다. 땡볕에서 온갖 기구를 가지고 풀을 잡던 농부 아빠는 뜨거움에 지쳐 들어가자고 한다. 모자도 안 쓰고 반팔에 내 그럴 줄 알았다. 농부 아낙을 보라. 얼마나 완벽한가. 의관을 정제하고 선비의 갓만큼이나 넓은 창이 달린 모자를 썼다. 목에 수건도 하나 두르고 밖에 내놓은 거라곤 얼굴 하나뿐이다.


해가 뜨거워진다. 사실 생강에게 씌워준 그늘막 덕분에 더 시원했다. 모자도 썼으니 이중 그늘막의 효과를 단단히 본 셈이다. 그러나 빼꼼 내민 얼굴이 뜨거워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풀을 뽑은 것도 아닌데 왜 얼굴이 뜨거울까. 땅만 보며 김을 매도 흙에 반사된 열기가 얼굴에 와닿는다.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것은 삐죽 나온 입이다. 말도 안 하는데 왜 뜨겁나 했다. 입부터 시작해 얼굴이 온통 뜨거워진다. 뻥뻥 뚫린 차양막은 35퍼센트라나 뭐라나. 좌우로 해가 다 들어오는군. 아 뜨겁다.  


농사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구슬땀이 떨어지는 순간이 온다. 농부 아낙은 그 순간을 좋아한다. 오늘도 구슬땀 한 방울 흘리며 생강밭 풀을 다 맸다. 아니 다 뽑았다.  농부 아낙의 손가락 만으로. 작은 손가락의 힘은 대단하다. 얼굴이 벌겋다. 집에 들어와 찬 방바닥과 한 몸이 되었지만 기분이 좋다. 세 시간 땡볕에서 홀로 소풍인지 수양인지 태양과 바람과 씨름인지, 풀과 손가락 씨름인지 모를 김매기 완료.



황톳빛 본연의 흙빛을 마주하는 뿌듯함. 풀을 매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땀방울의 힘이다.



다음날 손가락이 아프다고 골골대며 운전을 했다. 첫째 복동이가 왜 아프냐고 묻는다. 대체 손가락은 왜 아프냐며. 어제 김맸잖아.


“엄마 김매기가 뭐야?”


“앵?”


“너 미역 감기는 뭔지 알아?”


“어제 바다 갔다 왔어?”


바다는 무슨. 김이랑, 미역이랑 엄청 먹었다. 인마!


“너 피사리는 뭔 줄 알아?”


“몸 사리는 건 아는데. ㅎㅎ ”


엄마는 김을 매느라 고생하는데 아들은 김매기를 모른다. 김매기를 알려주려면 역시 땡볕에서 하루 굴려야 할까. 아들 다음 주는 들깨밭 김매기 같이 어때?

김매기 : 잡초 제거
피사리 : 피를 뽑는 일 (피는 상상에 맡김)
아들에게는 조, 피, 수수 할 때 피라고 말해줬는데 알아들었겠지?  
미역 감다 : 냇물에 들어가 몸을 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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