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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l 09. 2024

하늘이시여! 땅이시여!

깻모 두 판을 심었다. 생강 모종을 심고 다음날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농부 아빠가 심었다. 비가 와서 뿌리가 잘 내린다고 좋아한다.


그렇게 며칠 비가 올 줄 알았다. 기상청에서는 매일 비 예보가 있었다. 그러나 하루 잠깐 내리고 올 듯 말듯하며 비가 오지 않았다. 장마라면서 한 주 내내 비가 엄청 쏟아진다고 하여 물을 안 주고 기다린 농부 아빠 애가 탄다. 맨 땅에 심어 습기 머금을 구석이 없는 작물들. 뿌리는 작고 옆에 다른 풀이라도 있으면 그 덕이라도 좀 볼 텐데 잡초에 의지할 수는 없는 신세. 푸석한 모래흙이 타들어 가는 농부 아빠의 마음 같다. ‘오늘은 물 호스를 깔까?’, ‘오늘은 그냥 물조리로 물을 줄까?’ 하면 내일 비가 온단다. 날씨 예보란 농부의 밭에 안성맞춤으로 비를 뿌려주는 법이 없다. 그렇게 맨 밭을 하염없이 쳐다만 본다. 그렇게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하 늘 이 시 여! 도 와 주 소 서!


물을 못 먹은 생강 잎이 하나 둘 노란색이 되어 간다. 온다던 비는 안 오고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덕분에 농부 아빠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생강이에게 그늘막을 씌워줄 수도 없고... 없을 리가 있나. 까만 차양막을 벌써 사다 놓고 고춧대도 벌써 사다 놨다. 고춧대 박고 깜장 그늘막 쳐줄 기회만 엿본다. 농부가 아니라 식집사다. 텃밭에 아예 자리를 깔고 거 하시오.


거센 비가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 해가 뜨거워서 또 걱정이다. 농부의 걱정이 무색하게 잡초는 원하지도 부르지도 않았데,  다 갈아엎고 뿌리를 뽑은 줄 알았는데 잘도 올라온다. 생강 심은 지 1주일째 작은 개미 군단과 같은 잡초들이 몰려온다. 건장한 녀석도 흙에 파묻혀 있다 올라온다. 보름 정도 된 옥수수 밭은 초록 경고등이 켜졌다. 잡초를 조금 더 키우면 뽑지 못할 지경이 된다. 주말에 탱자탱자 놀고 뭘 했을까. 저것을 곡괭이로 한번 갈아엎어줄 것을.


농부 아빠가 급한 마음에 출근 전 30분이라도 풀을 맨다며 나갔다. 옥수수 밭 풀 매러 간 줄 알았건만 잡초에 파묻혀 죽어가는 영산홍이 눈에 밟혔나 보다. 지난해 가을 하루 온종일 품을 들여 농부 아낙이 심은 정원수. 영산홍을 살리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돌틈 사이 잡초를 낫으로 베었다고 한다. 그러곤 금방 벌에 쏘였다며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은 버물리뿐이다. 소독이라도 되라고 발라주었다. 상비약을 구비해야겠다.


옥수수 밭 잡초는 며칠 뒤로 미뤄졌다.


물은 하늘이든 농부든 주면 되지만 잡초는 답이 없다. 풀과 한 판 씨름판이 벌어지기 전에 얼른 호미질이든 괭이질이든 해야지.


맨땅에 심은 작물이 많기도 하다. 까만 비닐과 까만 제초 매트가 아쉬운 여름날이다. 같은 비를 맞고 같은 태양을 쬐는데 왜 잡초는 늘 농작물보다 더 파릇하고 싱그러울까.


한여름 농부와 잡초의 풀씨름은 이제 시작이다.


맨땅 님이시여!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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