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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근영 Sep 18. 2024

마음 다스림


나에게 글쓰기란 마음 다스림이다.

며칠 심란한 마음은 글쓰기를 주저하게 했다. 타자기에 올려놓으면 하얀 바탕에 줄줄이 글씨가 나타나 줄글이 되었지만 부정과 불만 투정 일색의 글이었다. 안 그래도 세상을 향한 삐딱한 시선을 가진 나인데 내 얕은 검열에도 걸리고 말아 중간에 글 쓰기를 그치거나 다 쓴 글은 자물쇠를 채워버렸다. 그 순간 나의 마음 또한 소중한 것이라 생각도 들었다. 그 고뇌가 가장 중할 수도 있겠다. 명절을 보내며. 그래서 글을 올리기를 주저했다. 내 부정적인 생각이 퍼지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글을 쓸 때엔 마음을 정갈하게 해야 한다. 그건 거짓을 뒤집어쓰는 건 아니다. 거울의 먼지를 닦아내듯 마음을 정돈하는 것이다. 그래도 먼지 한 톨 정도는 허용해 주자.


글쓰기는 기다림이다. 생각의 귀퉁이 어느 한 자락에 자리한 이야기, 단어를 메모하고 사진 찍어두곤 한다. 출근 시간이면 입에서 되뇌다 잊기도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문자 전송을 부탁하기도 한다. 눈으로 찰칵 사진 찍어두기도 한다. 그걸 글로 옮기는 작업은 어디에라도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야 할 수 있다. 자판을 펼칠 수 있는 딱딱하고 평평한 책상이 있어야 하고 일과 번잡한 것들로부터 떨어진 짧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루 동안 또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것들을 풀어내는 시간은 즐겁다. 오랜 기다림 끝이라 더 그런가 보다. 아침은 짧은 단어로 요약해 놓은 메모를 풀어놓기에 제격이다. 요즘은 핸드폰에 들어있는 음성메모기능을 이용한다. 내 음성을 잘 못 알아듣기는 하지만 두 손을 이용할 수 없을 때 메모를 많이 할 때 부탁하면 아주 용이하다.

“시리야, 쉬리야!” 대답을 안 할 때도 있다. 받아쓰기는 엉망이다. 그래도 나는 똑똑해서 대충 알아본다.


나에게 글쓰기란 세상을 향한 속삭임이다. 그들과 대화다. 한껏 그들을 품었다 내뱉는 것. 그들을 마음에 담뿍 받아들인다.

바람, 지금은 선풍기 바람. 소리, 자연이나 마음의 소리면 좋겠지만 게임 유튜브와 게임 소리. 냄새, 향긋한 솔향기이거나 꽃향기면 좋겠으나 점심에 먹고 남은 냄비 속 고기 냄새. 책상 위 늘 쌓이는 아이의 만들기, 걱정인형, 초밥, 나무 등등이 놓여 있다. 복실이의 필통에 담긴 필기구. 그리고 내가 애정하는 커피 한 잔. 두 칸짜리 남편이 만들어준 책꽂이는 가득 차서 위에도 책을 쌓고 있고 때로 아이들 책장의 책을 버리면서 공간을 넓혀 내 책을 옮기고 있다. 내 책꽂이 위는 책상 위처럼 뭐든 쌓이는데 꼬리가 터진 강아지 인형이 수선을 위해 대기 중이다. 셋째 달복이가 꿰매달라고 한 것을 몇 달째 미루고 있다. 책상중앙에 독서대를 놓았고 왼쪽에 독서대 하나를 더 놓았다. 중앙 독서대 오른쪽으로 핸드폰 충전기를 놓았고 그 옆으로 스탠드를 하나 놓았다. 이 모든 것들, 오밀조밀한 책상은 내 작은 세상이다. 몇 시간이고 등받이도 없는 이 책상에 앉아 논다.


다시 책상으로 돌아온 일상. 나의 책상은 싱크대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다. 밥솥이 옆에 있어 밥 하는 시간이면 칙칙 칙칙 증기 오르는 소리가 힘차게 들린다. 점심 설거지가 쌓여있는 걸 치울 생각은 않고 여유롭게 눈으로만 보아도 되는 참 행복한 내 공간.


추석을 잘 보내고 왔다.


다시 돌아온 일상.


홀린 듯 아침에 일어난다. 실은 불면증의 전 단계인지도 모른다. 밥 하는 아침은 그렇게도 싫어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아침 책 읽기 시간은 기다려진다. 나에게 글이란 아침 시간 몸을 자동으로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나에게 글이 이렇게 다가올 줄 몰랐다. 동창으로 오르는 아침 해를 글로 표현한다는 건 가슴 벅찬 일이다. 아침의 나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다. 참 대견하게도 스스로 몸을 일으키고 창을 연다. 풀벌레 소리를 담뿍 귀에 담고 새소리로 환기를 시킨다. 새와 풀벌레는 창에 달린 방충망 사이를 뚫고 들어와 거실과 주방을 한 바퀴 훑은 다음 잔잔한 일렁임을 공기 중에 뿌려 놓고 슬그머니 나간다. 그러곤 슬쩍 눅진하고 상큼한 아침 공기를 들여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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