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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은 나에게도 소중한 시간이다

by 눈항아리

아침시간이 중한 줄을 알았지만 이렇게 소중할 수가.

30분 밥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일어나자마자 야채 이것저것을 손질하고, 데치고 불에 올리는 데 걸린 시간이다. 반찬 하나에 들어가는 정성과 시간이 만만치 않다. 내 소중하고도 소중한 아침을 가져다 바치면서 다시금 알게 된 사실이다. 밥은 감사로 먹는 거다. 특히 아침은 그렇다. 아침에 밥에 쓰는 30분이 아까운 이유는 평소에는 10분 걸리는 시간을 늘려서 쓰려니 그렇다.



방학 중 낮 시간의 중요성이 더 커지면서 가게 주방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아침시간을 희생했다. 시간의 경중이 이렇게도 바뀐다. 어느 날은 밤에 밑반찬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침 시간 오랜만에 밥을 하면서 묵언 수행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사유는 늘 따라오기 때문에 파를 자르면서, 마늘을 부수면서도 생각을 한다. 사유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시간을 오래 투자한다고 좋은 생각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밥 하는 시간도 수행하듯 사유하는 것도 좋은 시간인 것 같다. 이렇게라도 합리화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주부다.


불에 올려둔 대형 냄비에서 간장과 야채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온다. 이제는 불의 시간이다. 아침부터 찌는 날씨다 역시 공간이 넓으니 냄새도 덜 짜증스럽다. 오래 끓이는 찜, 국 등은 가게 좁은 주방에서 하지 말자. 나는 집에 너른 주방이 있지 않은가.


아침 시간을 쪼개 하루 요리에 이용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그건 아침 독서 시간을 빼앗아 할애해야 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아침 요리를 하며 새로운 생각들이 튀어나올 줄 누가 알겠는가. 마음을 다스리고 상황을 나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내가 살 길이다.



상황은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방학 시작과 함께 달복이는 발을 다쳤고 아직 붓기가 가시지 않았다. 평소 신발 꺾어 신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운동화를 슬리퍼처럼 신고 다닌다. 학원까지 공중부양 능력을 아직 지니고 있다. 또 달복이는 방학 시작과 함께 감기가 걸렸다. 약 먹을 정도는 아니라 천천히 낫고 있다. 대신 많은 가족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다. 후발 주자 복실이가 열이 났다. 한여름의 열기에 더해 아이의 이마가 더욱 뜨끈해졌다. 아픈 김에 학원을 쉬었다. 일하느라 시간을 놓쳐 미처 아이를 학원에 못 데려다줘 쉰 날도 있다. 그리고 오늘부터 돌아가며 학원 방학이다. 방학이 무시무시하다.


방학 속의 방학. 여름이라 더우니 쉬어야 한다. 힘드니 쉬어야 한다. 나는 방학이 아닌데 다들 방학이다. 복실이가 오늘은 열이 안 나면 좋겠다.


아침 시간은 나에게 황금과도 같은 시간이다. 방학은 누구에게는 신나는 날들이나 나에게는 마음 다스림의 시간이다. 시간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시간의 무게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다. 아침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과 같이 나야 방학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나의 시간으로 살아보자. 아직 나에게는 30일의 방학이 있다. 그건 나의 방학이 아니라 너의 방학이지만 나의 방학으로 만들도록 노력해 보겠다.


즐거운 방학이다. 방학을 아껴가며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 그러나 이 시간은 나에게도 소중한 시간이다. 그냥 흘려보낼 것인가. 방학을 나의 아침 시간처럼 활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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