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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달인의 경지를 향하여

by 눈항아리

설거지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

손목과 손가락 관절 운동의 끝판왕.

설거지 레벨업 모드.


설거지 단계를 업그레이드하려면 우선은 설거지가 쌓여야 한다. 그러나 걱정 말라. 지속적으로 계속 설거지가 들어온다. 아침 후 간식, 점심 후 간식, 저녁 후 야식으로 끊임없이 먹는 것이 일과이니 쌓이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먹는 속도에 치우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 손이 빨라진다.


그 손은 벌써 10년 전 아이 셋이 되면서 빨라지기 시작했다. 둘째 때까지는 세월아 네월아 모든 그릇을 벌려둔 주방에서 살았다. 아기 하나 늘었다고 집안일이 갑자기 늘어날까. 늘어나는 설거지는 고작 밥그릇 하나 정도밖에 안 되었을 텐데, 늘어나는 빨랫거리도 작은 옷가지 하나 밖에 안 되었을 텐데. 유독 셋째가 태어날 무렵 설거지의 단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던 것이 생각난다. 노래를 자꾸 부르다 보면 목이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기계처럼 쭉쭉 올라가지는 않지만 높은 계단 하나를 가뿐히 오른 것 같은 느낌. 셋째가 태어나고서 그랬다. 설거지하는 손이 전투적으로 빨라졌다. 독수리 타법에서 양손 타법으로 갈아탄 느낌? 깨끗하고 말고를 떠나 속도만의 이야기다. 어느 한순간의 일이었다. 그 후 10년간 같은 계단에 머무르던 설거지 실력이 요즘 움찔대며 오를 기미를 보인다. 과연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달인의 경지로 오르는 길이라는데 좋아해야 할까?



설거지 달인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패대기친 고무장갑은 끼지 않는다. 덥고 답답하고 걸리적거린다. 아주 뜨거운 물로 설거지할 때만 사용한다. 불량주부가 완성한 설거지 3 단계를 보라.


1단계. 개수대의 모든 그릇을 없앤다.

2단계. 건조대의 빈 공간을 확보하라.

3단계. 반찬 그릇은 뚜껑을 맞춰 제자리에 두어라.


간단하고도 완벽한 단계설정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눈물을 참았던가. 가게 마감 전 내 주방도 마지막 정리를 한다. 싱크대 한편에 고이 모셔진 음식쓰레기를 버리며 눈물을 삼키었다. 고작 며칠이었고 금방 또 해답을 찾았지만 말이다.




밤이 지나고 나면 아침이 온다. 밤이 지나야 아침이 온다는 자명한 사실. 밤의 끄트머리에 서서 그것을 잊고야 만다. 고단한 몸을 밤까지 데려와라. 깊은 밤 절정의 순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아 보아라. 참은 눈물아 줄줄이 흘러내려도 괜찮다. 왜 삼키고 삼키었을까. 아침이 오면 눈물 자욱이 말라있을 테다. 눈곱과 함께 세수를 하여 찬물에 던져버리면 된다. 아침이 밤을 말끔히 씻어준다. 그러니 오늘밤은 울어도 된다. 밤을 향해 시작하는 아침을 다시 연다. 두려움도 없이 뚜벅뚜벅 걷는 하루. 시작. 오늘의 끝에 또다시 밤이 온다. 그러나 괜찮다. 밤의 끝은 항상 아침이니까. -8월 1일의 일기-



삼시세끼 챙기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다. 눈물의 삼시세끼. 설거지를 해결해야 다음 끼니를 생각할 수 있다. 점심 설거지가 조금 늘어났다고 주방이 난리였다. 밑반찬을 먹지 않는다고 매 끼니 음식을 해대니 더 그랬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손. 손바닥은 얼얼하고 손 관절이 두둑 거리며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고통은 팔을 타고 어깨로 올라온다. 주부의 고질병이다.


나는 불량주부이고 싶소! 되돌아가고 싶다.


쉼이 필요하다. 점심 한 끼의 쉼은 주부에게 평화였던 것이다. 학교님 빨리 개학을 하여 불량주부를 돌려주세요. 어머니에게 휴식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개학님은 오지를 않고 밥은 먹고살아야 한다. 하여 아침에 반찬을 하기 시작한 지 며칠 되었다. 반찬 통에 차곡차곡 담아 24리터 아이스 박스로 옮긴다.


어제 아침에는 열심히 반찬을 했다. 끓는 반찬을 보며 나도 책상에 앉았다. 신나게 글을 마구 올리고 덕분에 아이들을 늦게 깨웠다. 아침은 먹지도 못하고 아이스박스만 들고 출근했다. 지각이다. 콩이 탄다고 남편 사장에게 전화가 빗발치게 왔다.


퇴근할 때 챙겨야 하는 아이스팩은 잊고 왔다. 대신 아이스박스에 빈 반찬통을 가득 챙겨 왔다. 오늘은 어떻게 반찬을 데리고 가지?


삼시 세 끼는 감사다. 일하면서 방학 동안 아이들에게 밥을 챙겨줄 수 있다는 것도 감사다. 아이들은 그 밥의 의미를 알까? 아마도 모르지 않을까?


지극 정성으로 실컷 밥을 차려놓으면 라면을 먹겠다는 녀석이 있다. 등때기를 한 대 팍! 때려주고 싶다. 자전거 야행을 다녀와 야식을 꾹 참으며 다음날 라면 예약을 했던지라 거절하기 쉽지 않았다. 어찌하오리까. 라면은 이제 시간을 넘나드는 협상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라면도 밥의 범주에 포함시키면 맘 편할 것을. 그건 또 양보하기 싫은 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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