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가족의 빨래를 거실 바닥에 쏟아부었다. 빨래는 폭포수와 같이 소파에서 떨어져 내렸다. 넓게 퍼뜨려 널브러진 옷 무더기 한 귀퉁이에 앉아 홀로 빨래를 갰다. ’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그것이 딱 말는 맞다. 빨래도 나도 소리를 질렀다.
팔이 아파 저녁에는 도저히 하지 못하는 일이다. 한데 아침에 그것도 가장 바쁜 월요일 아침에 왜 빨래를 갤 생각이 났을까. 그러나 가끔은 살림의 규모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주부는 빨래를 개야 한다.
불량 주부는 아이들 각자의 옷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티셔츠가 복이의 것인지 복동이의 것인지 헷갈린다. 두 살 터울인 큰 아이들은 아빠와 셋이 체구가 비슷하다. 면티셔츠는 아빠 것으로 사도 검정이면 죄다 아이들 서랍장으로 들어간다. 서랍장은 철이 바뀌면 한 번 열어보는 게 전부다. 세탁기에 서랍장 하나씩 넣고 돌리고 말려서 다시 넣어준다. 아직 여름이 한참 남았으니 한동안은 아이들의 서랍장을 열어보지 않아도 된다. 서랍장 정리를 위해 간절기에 아이들 서랍장을 열어보는 것이 아니다. 입을 옷이 없다는 투정이 아이들 입 밖으로 튀어나오면 겸사겸사 하여 열어 보는 것이다. 철 지난 옷들 중 작은 옷, 해진 옷을 꺼내고 물려줄 옷 버릴 옷을 꺼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체 아이들 몫이다.
“입을 옷만 놔두고 모두 꺼내.”
성장기 어린이들은 몸이 철마다 크고 옷은 철철이 사 입어야 한다. 바지 서너 개, 티셔츠 몇 개만을 주로 입지만 서랍장이 넘쳐난다. 반듯하게 개켜서 착착 정리를 하면 좀 나을 텐데 둘둘 말아 박아둔다. 서랍장 문이 고이 닫히는 경우가 없다. 그러나 불량 주부의 손이 가기 쉽지 않다.
빨래를 개다 보니 복이의 바지는 밑단이 해진 것이 많다. 자전거에 넓은 바지가 쓸려서 그렇다. 한동안 그러고 다니다 아빠가 각반을 사줬다. 그러곤 잊고 있었다. 자전거 신나게 타기 시작한 지가 언제인데. 아들도, 엄마도 무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밑단을 수선해야겠다. 바느질의 시간이다. 남편은 단추가 떨어진 바지를 늘어놓았다. 그것도 수선해야겠다. 남편의 색 바랜 속옷도 새로 장만해야겠다. 이러저러해서 가끔 주부는 빨래를 개야 한다.
소파에서 내려와 소복이 쌓인 빨래를 갠다. 어깨춤을 추어가며 먼지를 털고 반듯하게 개킨다. 아이들의 팔다리가 내 팔 보다 길어지면서 털기가 힘들어 아이들에게 빨래 개기를 넘긴 지가 오래다. 오랜만에 큰아이들의 옷을 갰다. 참으로 많이 컸다.
커다란 빨래를 다 개고 나니 자잘한 양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짝을 찾으려면 시간이 한참 걸리므로 바닥에 그냥 퍼뜨려 놓았다. 어린이 4인, 8개의 눈으로 같은 그림 찾기 놀이를 하면 금방이다. 그러나 바쁜 4인방은 거실에 모여 앉을 시간이 없다. 각자의 방에서 화면을 보느라 빨래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몇 번을 협박과 같은 언어를 쏟아내면 보물과 같은 물건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슬금슬금 나온다. 방학과 함께 핸드폰과 일체형이 된 아이들 게임기와 합체한 그 녀석들. 자기 옷을 조금 만지작거리다 도망간다.
그러나 가끔씩은 일체형 합체 로봇과 같은 그들의 빨래를 개켜야 한다. 쌩하니 도망가는 그들이지만 나의 귀하고 어여쁜 자식들에게 떨어진 옷을 입힐 수는 없으니.
많이도 삐딱한 그녀는 불량주부다. 불량주부라서 그렇다. 이 많은 빨래가 돌아가도록 세탁기와 건조기를 지휘하는 것이 그녀 아니던가. 세탁이 되어 나오는 것만으로도 장하다. 세제를 잊지 않고 채워 넣는 것도 장한 일이다. 그러니 가끔만 옷 상태를 들여다 보아도 괜찮다. 세탁실, 거실에 빨래 언덕, 빨래 산 하나씩은 가지고 사는 게 인생이다.
다 할 수 없는 일을 붙잡고 늘어지지 말자. 알뜰히 살뜰히 정리하다 주부 몸이 부서질라. 불량주부의 몸을 보존하자. 적당히 눈을 감고 사는 것도 인생의 지혜다. 잘하고 있으니 괜찮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