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보나 Mar 08. 2024

숏다리의 굴욕

자가 유연성 테스트

모과를 써는 요즘 팔이 후덜덜 거린다. 어둠이 깔린 지 한참이 지나 집에 오면 팔을 들어 올릴 수가 없다. 다 된 빨래가 소파에 널브러져 있지만 거들떠보기도 싫다. 마음에서 떠난 지 오래다.


본래도 빨래 개키기를 싫어했는데 팔까지 힘드니 빨래 개기는 아이들과 남편의 몫이 되었다. 요즘은 남편의 지휘 아래 아이들이 모두 모여 빨래를 갠다. 빨래를 없애야 게임을 시켜준다. 금요일 밤은 게임하는 날이다. 아빠는 일을 부려 먹을 때 늘 적절한 보상을 함께 준다. 밤새 몇 시까지 게임을 한 지 알 수가 없다. 엄마는 그대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퇴근 후 신발을 벗고 들어와 의자에 얼굴을 기대고 앉아 뻗어 있었다. 가족 모두 게임의 열기에 빨래를 서둘러 개고 있다.


“이 바지는 누구 거야?”


아빠의 물음에 아이들은 엄마 바지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겨울에 웬 칠부바지?”


‘그건 칠부가 아니라 내 다리 길이오만.’


남편은 바지허리 양쪽을 잡고 팔을 들어 올린 채다.


‘좀 내려놓지?’


계속된 아빠의 행동에 아이들도 나도 모두 웃었다. 엄마는 진정한 숏다리였다. 이 굴욕을 언제든 갚아 주겠다.


내 바지는 길이가 짧다. 모두 짧다. 짧은 바지가 건조기에 들어가면 더 짧아지는 것 같다는 짧은 생각을 해본다. 건조기 탓이다.


한 번은 내 청바지가 3학년 아이 장롱에 들어가 있었다. 한 번은 그 아이가 그 청바지를 입고는 자기 것이라고 그런다. 이 굴욕을 언제든 갚아 주겠다.


다리를 길게 만들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자가 유연성 테스트

=롱다리 숏다리 테스트


다리가 짧아서 좋은 점이 딱 한 가지 있다. 유연성이 좋아 보인다는 것이다.

유연성 테스트의 허점 : 다리가 짧고 팔이 길면 상위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선 자세로 다리를 모으고 손을 아래로 뻗어보라.

발가락 앞 바닥에 손끝이 닿는다면 당신은 유연성이 좋은 것이다.

남편을 제외한 우리 식구 대부분은 손바닥이 바닥까지 닿는다.

유연성의 끝판왕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유연성을 점수로 환산해 온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좋단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유연성 테스트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신체 길이를 간과하고 있다.

공인된 유연함의 허점.


따라 하는 분들은 허리를 조심하시라.

허리와 다리가 찌릿찌릿한가?

손가락이 바닥까지 안 간다면 기뻐하라.

당신의 유연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진정 숏다리는 아니라는 증거다.


당신은 롱다리인가 숏다리 인가.

허리를 굽혀 팔을 쭉 뻗어보라.


나는 숏다리가 확실하다.





대신 나는 롱 허리다. 앉은키가 엄청 크다. 초등학교 때부터 상위권이었던 것을 보면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게 분명하다. 앉아 있으면 키 큰 사람들과 나란히 견줄만하다. 앉아 있을 때 뿌듯함을 많이 느낀다. 앉은 키에 위안을 얻어보며 다리를 늘이는 운동을 찾아봐야겠다.


“얘들아 미안하다. 엄마가 대를 물려 너희에게 남겨준 유산을 잘 활용하길 바란다.  배우자는 꼭 롱다리로 만나 대대손손 슬기롭게 잘 물려주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