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부터 열심히 뛰었다. 진짜 뛴 건 아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지만 나는 20 미터를 뛰어도 헉헉 거리는 사람이 아니던가. 토요일 아침부터 바쁘게 돌아쳤다.
아이들 아침 식사도 건너뛰고 농산물도매시장으로 간다. 당장 쓸 과일이 없다. 하늘도 좋고 바람도 좋고 구름도 좋은데 나만 바쁘다. 산과 하늘이 만나 만들 주는 경계선을 따라 눈이 한참을 오르내렸다. 먼 산을 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느릿하고 한가하기만 한 세월인데 옆을 보면 차가 쌩쌩이다. 깜빡이를 안 켜고 들어오려는 택시에게 빵! 하고 경적도 울려주고 브레이크 액셀을 번갈아 밟기가 바쁘다. 하늘은, 산은 저렇게 느긋하기만 한데.
옆에 늦었다고 조잘대는 녀석을 하나 태웠다. 왜 하필 학원 수업은 토요일 오전인지, 갈림길을 한참 지나 자신 먼저 학원에 태워달라는 녀석이다. 과일을 사서 박스로 들고 와 먼발치에서 손으로 아무리 불러도 조수석에 앉아 꿈쩍을 않는 괘씸한 아들 녀석. 안녕하세요 자세로 핸드폰만 보고 있다. 내릴 때 에어컨을 끄지 말아 달라고 친절하게 부탁하던 녀석이다. 엄마는 무거운 박스를 들어 힘 다 쓰고 태워다 줄 힘이 없다 욘석아. 옆자리에서 아침부터 경쾌한 탱고 피아노곡이 흘러나온다. 음악감상을 즐겨하지 않는 나는 영 거슬린다. 그것도 4차선 도로로 들어가면 더욱 그러하다. 신경이 분산된다. 우회전을 해야 하는 교차로에서 직진 차선을 곧장 타고 갔다. 음악 때문에! 그래서 늦을 수밖에 없는 거야. 음악 때문이야. 그 녀석에게 덤터기를 씌워보지만 듣기 싫으면 귀를 닫으란다.
“학원에 거의 다 와가요. 이제 좌회전해서 골목길로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
“가게 앞이 아니고? 학원은 왜? ”
“댁의 둘째 아드님이 오늘 아침에 수업이 있답니다.”
이것은 선생님께 하는 말이 아니다. 고약한 아들 녀석에게 하는 말도 아니다. 남편님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고 하는 말이다. 가게 앞에 손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가란다. 아이를 길에 내려놓고 - 보통은 친절하고 교통규칙과 어린이 보호를 실천하는 나는 주차를 완벽하게 한 후 아이가 내릴 수 있게 문을 열어 준 후 닫고 출발한다 - 달려갔다. 단골손님이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장에게 전화를 한 후 기다린 것이다.
부리나케 달렸다. 아침의 몰골을 생각지 못한 것은 나의 불찰이다. 나의 맨머리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 특히나 풀어헤친 머리로는 절대 밖을 안 나가지만 아침이라 샴푸하고 덜 마른 머리 조금 더 마르라고 정돈되지 않은 긴 머리를 고무줄 하나로 잘록 묶었다. 고무줄 아래 허옇고 산발인 머리가 푸시시 거리며 좌우로 움직이고 있을 테다. 나는 안 보이니 상관없으나 나이가 들면 하얘질 머리를 생각하며 같은 나이 또래, 혹은 더 나이 든 여성분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마디씩 한다. 한 마디가 뭔가 쯧쯧쯧을 안 하면 다행이다. 지나가는 모르는 행인도 자주 그런다. “어머 보기보다 동안이시다~~“ 주방 모자를 벗으면 몰라보는 사람이 더 많다. 모자 하나가 사람을 많이도 다르게 만든다. 머리색깔도 그렇다.
단골손님도 한 말씀 남기셨다. 두 말씀인가. ”여보 나도 나이 들면 머리가 저렇게 하얘질까?” “유전이죠? “ 맞아요. 여든 넘은 울 아빠도 머리가 하얗고 외할머니도 머리가 하얗죠. 뭐. 열쇠를 꺼내는 동안 단골손님의 남편님이 손수 과일 상자를 들어 가게 안까지 옮겨준다. 전등과 에어컨을 먼저 켜고 머리부터 묶어 올리고 모자를 덮어썼다. 머리가 빠져서 절대 주방에 그냥 들어갈 수 없다. 한순간의 변화에 놀라는 단골손님은 꽁꽁 묶어 올린 그 많은 머리가 가려진 것이 신기할 뿐이다.
모든 기계를 일사불란하게 켰다. 제빙기, 쇼케이스, 식기세척기, 그라인더, 포스기, 음악, 저울, 머신. 행주 네 개를 종류별 색깔별로 착착 놓고 커피머신 물을 쏴아아 아아 뺀다. 묵은 물도 빼고 묵은 커피 가루도 빼고 내 커피부터 내린다. 첫 잔은 내 거. 테이크아웃 컵에 손님의 디테일한 주문대로 얼음은 조금 우유는 가득 붓고 라테 샷을 얹는다. 커피의 짙은 갈색빛과 하얀 우유가 만나 천천히 어우러지는 색깔의 일렁임. 커피를 어떤 속도로 붓느냐에 따라 침강하며 우유와 섞이는 모습이 다르다. 빨대를 꽂는 순간 휘몰아치는 돌풍과도 같은 물결이 생기고 곧 우유와 커피의 조화롭고도 단순한 빛으로 정리가 된다. 단골손님은 손에 든 음료를 호로록 얼른 한숨 빨아 당겼다. 영수증 종이가 출력되었다. 손님은 포스기가 켜지기도 전에 미리 꽂아둔 카드 챙겨 들고선 떠나갔다. 아이스라테 3800원 마수 했다! 하루의 첫 매출. 돈 벌기 참 힘들다. 그래도 문 열기 전에 차에서 기다려주는 고객님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맙다. 10시 18분 첫 매출 발생. 집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침은 늘 이렇게 바쁘다. 밥을 안 했으니 오늘은 그나마 좀 한가한 편이다. 다행인 점은 아침은 정신없으나 금방 지나간다는 거다. 아침만 바쁜 건 아니지만 뭐. 이렇게 정신없는 아침을 위해 오픈시간은 11시다. 붙여놔도 소용없다. 오픈 시간과 상관없이 언제든 오는 손님은 반갑고 가는 손님은 붙잡고 싶은 것이 장사하는 사람 심리일까.
힘 빠진 나를 위한 아침 식사를 거하게 차렸다. 요즘 식단이 엉망이라 그런지 아침 기상이 힘들고 부기가 빠지지 않는다. 살찌는 건 절대 아니다. 내 체중은 움직이지 않는 고정불변이다. 넷째를 낳고 한결같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낮은 숫자에 머무르면 좋겠지만 높은 숫자라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쩌겠는가. 늘어나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지 하고 산다. 그리하여 준비한 초록 과일, 첫 잔으로 뽑아놓은 아메리카노와 어제 남은 머핀 하나. 아침밥이 거하다. 양이 많다. 포도도 머핀도 내가 먹기 너무 달다. 커피만 먹을걸. 한 송이 말고 몇 알만 먹을 걸. 배가 차서 점심을 못 먹겠다. 챙겨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 먹지 않아야 부기가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게 될까.
바쁜 나의 하루를 먹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하지 말라. 지금의 무게를 능가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 바쁜 일상을 자녀에게 보상받으려 하지 말라. 아이는 또 부모와는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산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바쁜 나의 하루를 돈으로 보상받으려 하지 말라. 내가 들이는 정성과 노력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일을 하며 돈을 안 바랄 수는 없지만 돈바라기만 하며 일을 하기에는 나는 너무 찬란하다. 바쁜 나의 일상을 배우자에게 보상받으려 하지 말라. 철없는 나보다 더 철이 없으니 둘이 만났겠지.
질끈 동여맨 희고 부스스한 머리는 채 마르지 않았으나 헝클어진 긴 꽁지머리가 휘날리도록 달리는 아침. 나를 위로해 주는 건 먼 하늘 아래 높은 산과 맞닿은 경계선, 바다의 수평선과 닮았으나 우여곡절 많아 보이는 높은 산등을 따라 오르내리는 내 시선이다.
아침은 바쁘다. 점심은 더 바쁘고 저녁이 오면 더 산만해진다. 밤이 오면 바쁜 하루를 정리하기 힘겹다. 그러니 아침은 시선을 멀리 두고 한가하게 맞아야 한다. 옆을 스쳐가는 못난 택시를 보지 말고 곧장 앞으로 가라. 흰머리 걱정해 주는 고객님보다 내 커피를 기다려준 단골손님을 보라. 지각이라며 투덜대는 아들에게 얼토당토않는 타박을 하지 말라. 바쁜 일상에 얽매이지 말고 시선을 멀리 두어라. 그리고 창을 열어 손을 뻗어 마주한 바람의 감촉을 기억하라. 고운 눈길이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곳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내 시선이 닿는 곳,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아침의 위로를 찾아본다.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린가. 아 억울한 내 아침. 우아하게 커피나 홀짝일 것을. 괜히 배부르게 포도 한 송이를 다 먹고 입에 단내가 가득이다. 정신 차리고 일이나 똑바로 하자. 슬슬 배고파지는데 간식을 먹을까 밥을 먹을까 좀 기다렸다 저녁을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