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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Sep 04. 2024

모두의 마술

초보 마술사의 절규

아들 셋 모두 초등 마술 방과 후수업을 들었다. 방학이 다가오면 방과후수업에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부모에게도 주어졌다. 저학년의 마술 수업은 꽤 쉬운 축에 속해서 간단한 눈 속임으로 펼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고학년으로 가면 한 번 더 생각해야 해서 굳은 머리 관객은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아이들이 방과후수업에서 마술을 배운다 함은 마술을 펼치는 기술, 눈 속임을 배우는 것이다. 속임수를 배우는 것이라 조금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란한 전문 마술사의 믿기 힘든 마술을 보면 전혀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 마술사는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전문 마술사가 썼다는 도구를 사고 그들의 유튜브를 열심히 시청하며 어디에 허점이 있을까 골똘히 생각해 보는 아이는 한 때 마술 꿈나무로 무럭무럭 자라기도 했다. 그것도 한때, 고학년이 되면 시들해지곤 했다. 구입했지만 지금은 쓰레기로 사라진 마술 도구가 얼마던가. 마술 주머니, 보자기, 스카프, 여러 종류의 카드와 종이들, 비밀 컵, 스펀지, 반짝이 불, 쇠붙이 등 보기만 해도 부실해 보이지만 한 때 소중한 마술사가 애정했던 소품들.




이번 학기부터 마술을 시작하는 넷째 복실이는 오빠들의 신기한 마술쇼를 보고 자랐다. 기대에 차서 마술 첫 수업을 하고 돌아와 관객인 엄마를 앞에 두고 시연을 한다.


왼손에는 컵, 오른손에는 공모양의 작은 구슬이 들려있다. 탁자에는 요술 지팡이가 놓여있다.

오른손의 구슬을 들어 보이며


“자 여기 씨앗이 있습니다. ”


컵에 씨앗을 넣고 탁자에 내려놓는다.

탁자에 놓인 요술 지팡이를 들고선 빙빙 돌리며 마법의 주문을 작게 왼다.


“쫑알쫑알 쫑알쫑알, 수리수리마수리“


요술 지팡이를 컵 안에 넣은 다음 재빠르게 들어 올리면 붉은 꽃이 피어난다.


어린이 마술사의 요청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1인 관객은 함성을 지르며 거센 박수를 쏟아낸다. 아이의 얼굴에 만족스럽고도 자랑스러운 미소가 걸린다.


이제 멋지게 공연을 마친 아이를 안아줄 시간이다.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자석에 이끌리듯 복실이 옆에 서있는 관객. 복실이는 열심히 마술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 관객은 컵 안에 든 빨간 꽃 옆에 있는 초록색 구슬을 발견하고 손에 쥐었다. 긴 막대기 봉을 한참 두드리며 마술 놀이에 심취해 있던 복실이는 관객의 손으로 건너간 자신의 구슬을 보더니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그러곤 왕방울보다 작은 방울방울 눈물방울을 후두두둑 떨구었다. 마술의 비밀을 부지불식간에 빼앗긴 마법사의 눈물 방울이 애처롭게 툭툭 떨어져 내렸다.


아뿔싸.


끝까지 지켜줘야 하는 걸 까먹었다.  

사실 이 마술은 모르려야 모를 수 없다. 세 명 중 어느 아들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꽃을 피우는 마법의 구슬 씨앗과 컵을 참관수업 기념 선물로까지 받아왔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손이 저절로 움직여 아는 체를 해버렸으니 망했다.


드디어 아이는 울음소리까지 빵 터졌다. 미안하다고 몇 번을 사과하고 아빠에게 보여주자 달랬다. 그러나 아빠라고 모를까 아들 셋이 줄줄이 아빠에게 선보였을 텐데. 모른척하라고 미리 언질이라도 해줄 것을 아빠는 아무 생각 없이 그 마술을 안다고 얘기해 버렸다.


침울한 복실이.


달복이 오빠에게 보여줄까? 한 가닥 희망을 걸어 보았는데... 달복이도 마술 방과 후에서 똑같은 수업을 했단다. 3년째 마술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는 달복이는 심지어 같은 수업이 세 번째라고 한다. 복실이는 의욕을 잃었다. 달복이 오빠가 아는 것은 큰오빠 둘이 모를 리가 없잖은가? 마술에 대한 모든 의욕을 한 순간에 잃은 복실이. 모두가 아는 마술 앞에서 초보 마술사는 절규했다. 아이는 다음 주 마술 수업을 갈 것인가 안 갈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마술을 대하는 관객의 자세>

알아도 모르는 척, 봤어도 못 본 척, 처음 보는 척.

우레와 같은 박수 장착.

우리 집 네 번째 마술사 꿈나무를 키우기 위한 엄마의 섬세한 관람을 요함.

마술사의 도구를 소중히 대해주는 자세도 요함.

자잘한 소품이라도 절대 버리면 안 됨.

굴러다닌다면 소중히 정리함에 넣어주기 바람

(쓰레기통 아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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