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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Sep 26. 2024

눈을 떴는데 눈을 감은 것 같아

좀비를 무서워하는 아이

벌레를 무서워하는 아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아이

화장실에도 주방에도 마당에도

혼자 가기를 주저하는 아이


엄마도 어릴 적에 그랬어.

강시 영화를 보면 잠자기 전까지 무서워서 혼났어.

더운 여름날

머리에서 발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렸지.

전설의 고향이 나오는 날이면

음악이 시작되면서부터 귀를 틀어막았어.

벌레는 아직도 무서운 걸.

세상은 무서운 것 투성이야.

그래도 네가 엄마 손을 잡아주면 괜찮더라.


불을 끄자 깜깜한 어둠이 눈앞을 가렸다.

아이는 그런다.


엄마, 눈을 떴는데 눈을 감은 것 같아.


앞이 갑자기 까맣게 변하자 순간 어떠한 빛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는 겁을 집어먹고 엄마를 꼭 잡으며 들러붙는다.


“눈을 감아. ”


그런다고 눈을 감을 녀석이 아니다. 아이는 눈을 감으면 더 무섭다 말하곤 한다. 특히 머리 감을 때, 눈을 뜨고 있으면 비눗물이 들어갈 것을 뻔히 알면서 도 슬금 뜨고 있다. 따갑다고 징징거리면서도 눈을 감으면 따라오는 어둠이 무서워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이다.


머리 감을 때는 나도 무섭다. 무서운 이야기에 단골로 나오는 처녀 귀신의 긴 머리카락 때문이다. 먼 옛날 친구가 들려준 무서운 이야기. 머리 감을 때 자세에 주의하라. 허리를 안녕하세요 자세로 반 접으며 머리를 아래로 더더 숙이며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다. 그리고 눈을 뜨면 보인다는 긴 머리 귀신. 혹 그녀를 만날까 무서워 한 동안 눈을 꼭 감고 벌벌 떨었던 기억이 있다. 무서우면 눈을 꼭 감아야지 왜 그걸 확인하려는 걸까? 그녀를 만날지도 모르는 그곳, 욕실에서 씻는 건 그래서 무섭다.


 어린 시절 나도 때로는 그랬지 참. 강시 비디오테이프를 계속 돌려보던 기억이 스멀스멀. 숨도 꾹 참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강시가 콩콩거리며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무서운 장면을 못 보면서도 살짝 실눈을 뜨고 이불 사이로 머리를 빼꼼 내밀고 보고 또 보았던 추억 속의 강시.

 

눈을 떠야 덜 무서울까. 눈을 감아야 덜 무서울까.


금방 불이 꺼져 깜깜해진 허공에 뭐 볼 것이 있다고 복실이는 눈을 뜨고 있을까. 아이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을 부릅뜨고 가로등 불빛이 거실로 비쳐 들어오며 만들어내는 기다란 빛줄기를 찾아내고야 만다.


“이제 밝아졌어. ”


보이지 않는 아득한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너.


아이는 곧 이불 아래 따스한 어둠 속으로 밀려들어와 잠이 들었다.


귀신을 무서워하고

벌레를 무서워하고

어둠을 무서워하고

화장실도 주방도 무서워하고

혼자가 무서운

내가 더해 만든 아이의 두려움


어둠 속을 확인하는 아이의 눈은 때로 용감해 보인다. 나도 살짝 떠볼까? 이제는 무서운 영화는 근처에도 안 가는 겁쟁이 엄마. 무서울 땐 눈을 감는 게 우리 세계 국룰이다.


날아오는 공을 보고 눈을 감으면 어떡해. 보고 피해야지.

남편은 줄곧 눈을 뜨라고 한다.

그건 공 얘기지! 난 귀신이 무섭다고.

벌레는!

둔갑술을 한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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