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수확한 들깨를 방앗간에 가져갔다. 방앗간 주인은 남편과 안면을 터서 방앗간에 가는 건 남편의 몫이다. 물론 고춧가루를 빻는 일도 남편의 몫이다. 남은 들깨를 모두 들고나간 남편이 들기름을 병으로 들고 왔다. 오는 길에 옆집에 하나 나눠줬다. 두 병은 어머님 가져다 드렸다. 한 병은 언니네 줬다. 남은 병은 다섯 병 이상이다. 참 사람이 허술하다. 몇 병인지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기름 부자다. 기름 값이 비싼데 음하하하하!
나는 들기름 부자다!
방앗간에서 주는 빨간 뚜껑이 달린 청록색 불투명한 병에 담겨온 들기름. 참깨를 섞어 짜면 더 고소하다는데 이번에는 그냥 들깨만 짜왔다. 집 냉장고에도 가게 냉장고에도 들기름을 구비해 뒀다. 들깨가 있는데 들기름을 사 쓰기도 애매하고 기름 짜오기만을 바라다 만난 터라 더욱 반갑다. 들기름을 유독 좋아하는 남편. 김치볶음, 볶음밥에는 들기름을 빼놓을 수 없다. 식용유로 볶으면 볶음이 완성되지 않는다.
이 나이가 먹도록 열심히 볶아 먹었는데 들기름이 안 좋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요즘은 정보가 워낙 빠르게 돌고 도니 나도 그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들기름은 발연점이 낮아서 볶으면 몸에 안 좋단다. 그럼 우리의 김치볶음과 볶음밥은 어떻게 완성하라는 말인가. 그렇다고 김치볶음에 들기름을 안 넣으면 서운할 울 남편. 그리하여 식용유로 달달 볶고 마지막에 살짝 섞어 주었다. 볶음밥도 식용유를 쓰고 들기름은 마지막에 첨가해 주었다. 그럼 될까요? 먹지 말래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들기름이다.
오랜만에 신선한 기름을 짜왔다. 냉장고는 텅텅 비었고 하루 된 밥이 밥솥에서 꺼내달란다. 양파 하나를 까고 스팸 뚜껑을 땄다. 둘 다 썰어서 달달 볶았다. 식용유로 볶았다. 아침부터 기름내가 진동한다. 간편한 아침식사 볶음밥의 마지막은 들기름 솔솔 뿌려 뒤적뒤적 섞고 깨소금을 또 솔솔 뿌리면 완성이다. 등교 시간에 쫓기는 복이는 안 먹고, 등교 시간에 쫓기지만 복동이는 먹고선 더 못 먹어 아쉬워한다. 달복이도 10분에 한 그릇 다 비웠고, 복실이도 오랜만에 아침밥 먹는 속도가 빠르다. 음하하하하! 들기름의 힘인가! 그건 내 생각이고 한 통 다 썰어 넣은 스팸의 위력이다.
아침의 순발력을 발휘하여 휘리릭 마법을 선보였다. 10분 안에 싱크대 정리가 되었다. 그건 정말 아침의 마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른 시간에는 절대 그렇게 바람과 같이 빠른 속도로 설거지와 정리가 마무리될 수 없다. 마법의 시간을 지나 나가려던 찰나 들기름 빨간 뚜껑이 열린 채 싱크대 위에서 외로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 병을 왜 안 치웠을까. 순간 벌어지는 마법은 때로는 한 두 가지를 빼먹기도 하는데 냉장에 넣을 음식을 잊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들기름이 눈에 띄어서 다행이다. 뚜껑이 열려 있는 걸 발견해서 참 다행이다. 얼른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었다.
냉장고 문에 들기름 병을 넣는 순간! 뻥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빨간 뚜껑이 열렸다. 그리고 손등에 기름이 날아와 붙었다. 헉! 빨리 나가야 하는데 웬 들기름 같은! 잽싸게 개수대 물을 틀어 손을 비벼 씻었지만 기름이 번들거린다. 퐁퐁을 짜서 얼른 씻어내고 뛰쳐나갔다. 달복이와 복실이는 먼저 앉아 안전벨트까지 매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늘 엄마가 늦는다. 얘들아 미안해 오늘은 들기름이 엄마를 붙잡는 바람에... 오늘은 절대 지각이 아니야 얘들아 엄마가 정신 집중해서 운전할게.
출발!
우리의 아침은 늘 이렇게 정신없이 시작된다. 그러나 출발과 함께 초록 산과 노란 들판, 파란 하늘, 쌩쌩 달리는 차들을 구경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논에서 먹이를 찾는 하얀 새가 커다란 날개를 펴고 훨훨 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농촌의 아침 풍경은 꽤 볼만하다. 바쁜 출근길에도 그건 매일 받는 선물과도 같다. 그런데 오늘은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력이 저하된 것이 아니다. 날이 흐려서도 아니다 후각 상승의 요인이 스멀스멀 어디선가 나타나서 그렇다. 아침에 볶음밥을 먹어서 그런가? 집중이 안된다.
운전하는 팔 한쪽에 직선을 그리고 있는 투명한 액체가 눈에 들어온다. 그제야 왼쪽 팔뚝에서 고소한 냄새가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손등에만 묻은 줄 알고 씻어낸 들기름이 팔뚝까지 튀었던가. 들기름이 아침 들녘을 구경하고 싶었나 보다. 팔뚝에 묻은 들기름 내를 맡으며 그렇게 학교까지 20분을 운전했다. 밀폐된 차 안에서 우리는 그렇게 고소한 아침을 맞았다. 들기름 향을 팔뚝에 맞은 고소한 아침.
참 좋다. 제 시간에 골인!
고소한 아침을 맞이하는 방법.
들기름을 솔솔 뿌린다.
팔뚝에 뿌리면 효과가 좋다.
들기름 향수인가!
이런 시골의 고소한 향수 같은!
기름이 튀었다면 온몸을 확인하자.
기름부자라고 소문이 나면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