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에 함께 커피를 마시며

부실한 함께의 의미를 생각해 보며

by 눈항아리

한약이 아닌데 사발에 담기게 된 커피. 설거지 거리를 모아 식기 세척기에 넣고 나니 컵이 없다.


설거지는 은근 손 관절을 많이 써야 한다. 설렁설렁 씻으면 그릇이 알아챈다. 박박 문질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세척기를 쓰면서 가게에도 집에서도 손건강을 좀 더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설거지 중 컵은 그중 수월한 편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깊이가 있어 손을 오목한 안쪽까지 넣어야 하고 손잡이까지 씻어내려면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컵이란 컵은 다 꺼내 놓고 그 많은 컵들이 다하도록 싱크대에 쌓이고 나면 식기세척기를 돌린다. 그리하여 저녁 설거지와 함께 식기 세척기에 모두 들어간 컵들. 보통 하나 둘 정도는 남는데 이번에는 하나도 안 보인다.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남편을 위해 수소문한 것이 밥사발 하나와 물병으로 쓰는 스텐 텀블러. 그 외에는 모두 접시이거나 냄비다. 할 수 없이 나는 밥그릇에 남편은 텀블러에 커피를 담았다. 텀블러는 따뜻함이 지속되어 한 모금 삼키기가 어렵다. 아직도 호로록 거리며 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밥그릇은 두 손으로 잡아야 한다. 처음엔 두 손바닥이 뜨거웠으나 생각보다 금세 식었다. 커피 양도 금방 줄어 한 손으로 잡아 다 식은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야밤에 혼자 마실 것이지 밤 잠은 언제 자나. 나는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인데. 아들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다하지는 못하고 물을 듬뿍 부어 연하게 마셨다.


남편은 하루 종일 혼자 일하고 돌아와서 또 혼자 실내 자전거를 타고 땀범벅이 되어 들어왔다. 시간이 안 늦었다며 복이와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길래 ‘함께’를 외치며 불만을 표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이상 야릇한 야밤의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함께


나는 책상에서 그는 그의 책상에서. 나는 책과 글과 그는 아이들과 게임을 하며. 그는 텀블러 나는 밥사발. 함께하는 건 같은 거실이라는 공간, 진한고동빛 커피. 심지어 그의 커피는 뜨겁고 내 커피는 다 식어서 뱃속으로 들어갔다.


이런 부실한 함께라니.

그러나 사발에 마시는 커피 맛만은 좋다.

두런두런 말소리도 좋다.

“빠져 빠져 빠져. 피 채워야돼. ~~“

아이고 두야.

이 사발에 막걸리 콸콸 부어 한 사발 마시면 참 맛나겠다. 쩝. 닭발에 막걸리 쩝. 막걸리 맛이 생각도 안 난다. 그게 언제적 일인지도 가물가물하다.

사발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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