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복이가 또 바닥에서 용을 쓴다. 책상을 놔두고, 거실에 중앙에 놓인 탁자도 놔두고 달복이는 가부좌를 틀고 맨바닥에 엎드리듯 앉았다. 일기장을 펴고 연필을 하나 들고 몸을 잔뜩 구부리니 살집 없는 등이 하늘을 향해 솟았다. 저 자세는 내가 모르는 어느 세계 요가에 나오는 자세는 아닐까. 아니면 고행을 하는 수행자의 자세가 아닐까.
왜 아이는 바닥에서 저러고 있을까.
둘째 복이도 늘 그러했다. 복이가 애정하는 곳도 방바닥이었다. 심지어 복이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자신의 책상 위에 소지품들을 주르르 늘어놓고선 늘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작고 흐릿하고 모호한 글씨를 공책에 적는다. 때로는 뭉툭한 작은 연필을 들고 수학 문제를 푼다. 맨바닥에 종이를 펴 놓고 커다란 몸을 접은 상태로 엎드리고 앉아서 집중하는 모습은 꽤 볼만하다.
달복이가 그런 형을 닮았나 보다. 자신의 책상은 컴퓨터 용으로 사용하고 자판을 아무리 한쪽으로 치워놔도 또다시 시청용으로 사용하고 만다. 월요일을 세 시간 앞두고 겨우 주말 숙제를 하는데 늘 하는 것처럼 숙제는 거실 바닥까지 데리고 나와 바닥에 펼친 것이다. 글씨는 형의 글씨를 또한 닮아 작고 흐릿하고 모호하다. 가끔 숙제인 일기장을 펼쳐보면 나의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반듯한 필체의 담임 선생님의 답글과 격려의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생님 눈이 멀쩡하실까. 달복이의 일기장 글씨를 해독하는 경지에 이른 선생님의 혜안과 너그러운 마음에 감사를 전한다. 암호 해독 전문가 우리 선생님 존경합니다.
네 아이에게 공평하게 책상을 놔줬다. 부모의 의무를 다하는 마음으로 바퀴도 달리고 뒤로 안 밀리고 통기성 있으며 높낮이 조절도 되는 의자로 놔줬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일까. 편안한 대지의 기운이 심적 안정을 주는 것일까. 심지어 책을 읽을 때도 바닥을 독서대로 이용한다. 편안한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 만화책을 읽고선 바닥에 두고 그대로 일어서서 유유히 걸어간다. 또 하나 펼치고 펼치고 펼친다. 책 징검다리를 건설하는 것인가. 아이는 건축가의 기질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먼 훗날 세기에 남을만한 다리를 건설하고 난 후 아이는 이렇게 회상할 지도.
제 나이 10세에 벌써 건물의 토대가 되는 바닥의 안정감을 좋아했고 그 위에 원시 다리의 기초부터 놓기 시작했습니다.
달복이가 일기 숙제를 시작한 지 40분이 지나간다. 누구도 보지 못하도록 손으로 가리면서 쓰는데 얼핏 보니 대충 열 줄이 되어간다. 열 줄을 채워 넣으면 되니 얼마 안 남았다. 이제 두 줄 남았단다. 50분을 꽉 채워 숙제를 완성하고 일어선다. 고생했다, 바닥아. 끈기 있는 달복이의 일기장을 장장 50분 동안 붙잡고 있느라 진땀 좀 뺐겠구나. 한 줄에 5분, 그 일기가 궁금할세. 한 손으로 가리고 동생 복실이가 보자고 해도 절대 안 보여준다는 그 일기 언제 한번 구경 좀 하면 좋겠다.
엄마 일기 좀 보여줘.
절대 안 돼!
그냥 나중에 몰래 볼걸 그랬다.
발끝에 서늘한 기운이 몰려든다. 방바닥이 따뜻하게 기름보일러를 돌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