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설렁 느리다. 박박 문질러주고 싶다. 평소에 엄마가 씻겨주면 아팠다며 거품이 묻기만 하면 통과다. 머리가 가장 문제일 거라 생각했는데 헹굼에 집중하기로 하니 오히려 수월하다. 긴 머리를 자르지 않고 스스로 감아보겠다고 했다. 단발로 자르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동그라니 참 귀여웠는데 조금 더 어릴 때 아기 복실이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좀 아쉽다. 당분간 샴푸만 하기로 했다. 린스는 머리 말릴 때 쓰는 뿌리는 트리트먼트로 대신한다. 찰랑찰랑 긴 머리 엉키지 말라고 뿌려준다.
복실이가 씻는 동안 엄마는 열심히 입으로 씻겨줬다. 첫날은 계속 물온도를 만져가며 체크해 줬는데 그것도 참아 보기로 했다. 자동으로 수전에 손이 가는 것을 몇 번이나 막았다. 두 번째 날 홀로 씻기 성공! 입이 아프다. 입으로 씻겨주기 신공을 얻었다고 한다.
성공을 기반으로 머리도 말려 본다. 성취감은 용기를 낳는다. 평소처럼 “누가 내 머리 말려줄 거야.” 그러면서 머리에 수건을 말아 올린 채 거실로 나온 아이. 거드름을 피우며 대접받던 공주님 이제는 직접 드라이를 들어본다. 시범을 보여준다. 오른손에 들고 흔들어 그리고 움직여. ok!
접수한 아이. 드라이기를 들었으나 무겁다. 정지한 상태로 바람을 쏘인다. “그럼 머리 타! “ 이번엔 머리 숙인 자세로 시작! 드라이 든 손은 안 움직이고 왼손은 느릿하게 머리를 헝클고 있다. 진척이 없는 상황, 드라이기를 엄마 손으로 잡아챌까 고민하는데 아이가 움직인다. 머리를 움직인다. 곧이어 리듬을 타는지 몸도 움직인다. 다만 드라이를 든 오른손만은 고정이다. 참아보자. 백 번만 세 보는 거야. 드라이를 잡아채 오려는 마음을 꾹 눌렀다.
가만 아이를 쳐다보며 혼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헤비메탈 가수의 느린 헤드뱅잉 포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계속 몸과 머리를 흔든다. 백 번이 끝나고 머리를 말려주는데 아이가 묻는다. “이걸 이제 내가 하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