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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서 뛰지 마시오

빈 소파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by 눈항아리


7분 만에 태산이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태산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빨래를 갭니다. 아이들과 함께입니다.


엄마 주도 빨래 개기이니 내가 손을 놓으면 다시 쌓일 것을 압니다. 태산을 쌓는 일이 이렇게 쉽습니다. 그래서 매일 쌓이고 쌓이고 또 쌓였던 겁니다.

7분 만에 사라진 빨래더미 때문에 시간이 남아돕니다. 소파 앞 빨래터에 다소곳이 앉았습니다. 복실이의 새 바지와 바느질함 들고 왔지요. 바짓단을 줄입니다. 전날 한쪽은 완성했습니다. 엄마를 닮은 것인지 새로 산 바지 다리가 너무 길어서 그런지 알 수 없습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입어보지 않고 대충 사이즈만 보고 주문했더니 원치 않는 바지가 왔습니다. 통이 넓고 바짓단 아래에는 무겁고 반짝이는 똑딱이 금속 단추가 세 개나 달렸습니다. 모양이 아니고 심지어 열립니다. 운동복 바지를 싹둑 잘랐습니다. 아래부터 세 개 있던 똑딱이 단추가 두 개가 되었습니다. 두 번 접어 마감하고 치렁치렁할까 봐서 고무줄을 넣어 줬습니다. 한쪽 다리에 하루씩, 이틀에 완성했습니다. 고무줄을 넣으니 길이가 많이 짧아졌습니다. 아주 딱 맞습니다. 발목뼈가 훤히 드러납니다. 어쩌지요? 너무 많이 자른 것 같습니다.

엄마가 바느질을 하는 동안 복실이와 달복이는 거실에서 뛰어놀았습니다. 한 명은 소파에서 뛰고 한 명은 소파 아래에서 뜁니다. 그 중심에서 바늘을 든 나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바짓단을 꿰매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게임이 접목된 놀이를 합니다. 자리를 바꿔가며 놉니다. 나는 정신이 없으나 아이 둘은 하하 호호 즐겁습니다. 호흡이 척척 맞습니다. 둘 다 소파에서 뛰는 건 똑같습니다. 놀이의 한 부분인가 봅니다. 소파가 아래로 푹 꺼지면 복실이와 달복이에게 소파를 새 걸로 사달라고 해야겠습니다. 뛰어놀던 오늘을 꼭 기억해 두겠습니다. ​


비어있다는 건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채울 수 있지요. 어떤 의미로,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는 사용자가 정합니다.

사용자 어린이들!
소파는 방방이(트램펄린)가 아니란다.


소파가 소파의 제 기능을 유지하며 오래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태산처럼 빨래로 가득 차 있을 땐 소파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 생각지 못했습니다. 먼 옛날의 일 같지만 한 달 전의 일입니다. 누군가 소파에 앉아 빨래를 눌러 납작하게 만들면 화를 냈습니다. 눌린 빨래를 혼자 다 개라며 저주를 내렸습니다. 누구도 소파에 편히 앉기를 주저했습니다. 소파 위에서 뛰는 아이들을 보며 마녀와 같았던 내 모습을 되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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