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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가 최고다

by 눈항아리

늦은 밤 그래도 소파만은 사수하였다. 운동을 한다며 전날 쌩하니 나갔던 복이가 어쩐 일인지 먼저 자신의 옷을 정리했다. 전날 모두 도망갔더라 푸념을 늘어놓으며 다른 가족들도 모두 모여달라 넌지시 말했다.


더 이상 아무도 안 왔다.

​복이가 최고다.


평소 자신의 빨래만 개고 사라지던 녀석은 수건도 개서 탑을 두 개나 쌓았다. 개인주의가 철저한 녀석이라 그건 큰 발전이라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옷을 개면서 입으로는 가족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혼자 하기는 억울한 것이다. 다 돌아간 건조기 속 많고 많은 빨래 중에서 자신의 바지만 쏙 골라 꺼내오던 아이가 아니었던가. 장하다 우리 아들! 고맙다. 사랑한다.

소파는 밤을 잘 지샜다. 휑한 거실을 홀로 지켰다. 가로등 아래 훤한 마당을 바라보며 낮에는 누리지 못했던 편안한 휴식 시간을 보냈다. 누구도 억누르지 않고 짓누름도 없었다. 어두운 밤, 평온과 고요 속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렸다.

가족들은 잘 잔다. 세탁기, 건조기가 아무리 돌아가도 듣는 귀가 없다. 세상모르고 쿨쿨 잔다. 어두운 새벽, 평소 습관처럼 일어나 세탁기 버튼을 누르고 잠이 깨버렸다. 더 잘까 망설여진다.



‘다 돌아간 건조기 속 많고 많은 빨래 중에서 자신의 바지만 쏙 골라 꺼내오던 아이’

우리 복이는 이런 아이였다.

2024년 1월 18월


<개인주의 어린이 건조기에서 빨래 꺼내기>


바지가 없다는 둘째 복이. 둘둘 말아서 옷장에 넣어놨겠지.’ 빨래 바구니를 뒤지는 둘째에게 건조기가 거의 돌아갔으니 바지를 꺼내 입으라고 귀띔해 주었다. 복이는 멋들어진 긴 다리를 끌고 느릿한 걸음으로 흐느적흐느적 걸어가더니 건조기 앞에서 멈췄다. 전원 버튼은 누르고 딸깍 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문을 계속 연다. 행동은 느리지만 마음은 늘 바쁜 이 아이. 문은 세 번 연속으로 당긴 뒤에야 딸깍 소리가 나며 잠금이 풀린다. ‘부수겠다. 아이야, 조금 기다려라.’ 큰소리가 입에서 나오려던 걸 손으로 막았다. 손쉽게 바지 하나를 꺼내 들고 베란다 문지방을 넘어 거실을 지나 씻으러 간다.

아이가 바지만 꺼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다. 이번에도 나가야 할 시간이 빠듯하고 씻어야 할 시간이 급박해 자신의 바지만 가지고 갈 것이 뻔했다. 그러나 둘째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던 큰아이는 짐작하지 못했나 보다. 큰아이는 늘 무지막지한 양의 빨래를 옮기는 당번이다. 아래쪽 세탁기 빨래도 위쪽 건조기로 올려 돌리는 당번이다. 그런데 동생이 바지 한 장 달랑 가지고 나오니 어이없어하며 웃는다. 자기 것만 챙기는 극히 개인적인 행동. 엄마도 둘째라 공감 가는 행태지만 첫째인 큰 아이 눈에는 용납 못 할 얌체로 보일 테다.


큰아이는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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