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해야 하는 일. 의무. 소임. 책임. 본분. 우리에게 주어진 그런 일들이 있다. 살림은 다양한 역할을 가진 우리에게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따라붙은 의무다. 나는 주부라서 더욱 깊게 체감하고 있을 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안 먹고 안 자고 안 입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 중심에 살람이라는 의무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살림을 넘어서 자아실현을 이루고, 또 어떤 사람은 살림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면 신세 한탄을 한다. 소파 하나를 치우지 못해 절절매며 인증을 하고 있는 나는 허우적거리는 신세에 해당한다. 살림을 넘어서는 방법은 대체 무엇인가.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코를 밖에 두면 되나? 입으로 살림을 하면 될까. 자꾸 샛길이나 다른 묘수가 없을까 궁리해 보게 된다.
아픈 날은 더욱 살림을 놓아두고 싶다. 그러나 해야 하는 일이라 꾸역꾸역 한다. 밥을 안 먹을 수 없으니 꾸역꾸역 반찬을 하고 밥을 해야 한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살 것을 뻔히 아니 청소기를 안 돌릴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은 한정돼 있어서 또 모든 것을 다 하고 살 수도 없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이유다.
꼭 해야 하는 것. 먹고사는 일에 관계된 것. 밥 하기와 설거지하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가끔 빨래가 이곳에 속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의 교복, 체육복 세탁이 그렇다.
안 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 안 하고 살고 싶은데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부자리 정리가 그렇다. 빨래 개기도 그렇다. 쓰레기 정리도 그렇다. 청소도 그렇다. ‘그냥 안 하고 살면 안 되나? ’ 그런 마음이 굴뚝같다.
대충 안 하고 살아왔는데 빨래를 정리하고 치워 보니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공간 활용이 된다. 집이 집 같아 보인다. 빨래에게 끌려다니는 주부에서 빨래를 지휘하는 주부가 되니 편리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환절기가 되어 계절 옷이 뭐가 필요한지 따로 확인하지 않아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건 묵묵히 서랍 정리를 한 덕이다. 아이들에게만 맡기지 않고 주부가 한두 번이라도 넣어준 덕이다. 빨래에게 선제공격을 하고 이기고 있는 중인 듯한 느낌. 이겼다가 될 수는 없는 것이 살림이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그렇다.
어제는 아팠다. 당장 누워야 하는 상황, 빨래만은 개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빨래 몇 개를 갠 후 아이들을 지휘했다. 엄마가 빨래 개기에 얼마나 진심인지 아이들은 이제 안다. 고맙다 얘들아.
모든 살림에 진심이 된다면 아픈 날도, 하기 싫은 날도 주부의 아주 적은 노력으로도 살림이 잘 굴러가도록 할 수 있을까.
나는 정복자의 자세로 100일들을 살려고 한다. 계획은 차분히. 소파 사수는 100일로 충분히 습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 소파에서 거실로 점령지를 넓히고 주방과 안방을 탈환하고 화장실을 점령한 다음. 아이들 방도 차례대로 순시할 계획이다. 계획과 실행은 하나에 100일씩 오랫동안 계속될 거다. 평생의 사업이 될 것 같다. 인증을 하든 안 하든 살림은 평생의 사업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평생 일이 샘솟는 좋은 사업 아이템이 다 있나. 그 샘물에서 돈이 솟아나면 좋으련만...
살림은 평생 사업이다.
살림에 끌려다니지 않겠다.
살림을 끌고 가겠다.
살림을 지휘하는 사람이 되겠다.
살림에 진심인 사람이 되겠다.
주부는 정복자다.
나는 이기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