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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의 딜레마

by 눈항아리

한 무더기의 빨래를 정리하기 위해

나대는 심장을 잡고 찬 바닥에 앉았다.

가족의 손이 더 빠른 날도 있어서

나는 딱 두 개만 갰다.

그리고 잠을 잤다.

세탁기를 돌릴 정신도 없이

잠이 들었다.

빨래를 빨지 않으면 소파가 빈다.

밤새 비어있던 소파는

하루 종일 깨끗할 테다

대신 베란다 빨래터에 빨래산이 생길 테지.

세탁기가 열심히 돌아가면

소파 위에 또 다른 빨래산이 쌓일 테지.

빨래로 보는 삶의 딜레마


입지 않을 수 없고

빨지 않을 수 없고

정리하지 않을 수 없고

인생에는 우스운 장치들이 참 많기도 하다.

하루 세탁을 쉰다고 빨래가 썩는 것도 아니니 하루쯤 쉬자.

세탁기도 건조기도 휴일이 있어야지.

안 그래도 매일 돌아가던 건조기는 끽끽거려 수리를 받았다.

매일 돌려서 그런 건 아닐까.

미세먼지가 끼어서 그렇다고 했다.

먼지통 샤워를 시켜 널어놨다.

매일 샤워를 시키라고 했다.

관리받는 녀석들 좋겠다.

먼지 통을 꺼내놓으니 본체의 먼지가 보였다.

집안일은 알 수 없는 미궁의 세계다.

무궁무진하고 흥미진진하고 계속 이어진다.


입지 않을 수 없고 빨지 않을 수 없다.

먹지 않을 수 없고 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딜레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쉬면서 달리자. 달리면서 쉬어야 하나?

암튼 삶은 계속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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