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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소파

by 눈항아리

퇴근 후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 가족들. 소파 앞 빨래터에 오랜만에 혼자 남겨졌다. 빨래를 정리한다. 식구들의 서랍장을 오랜만에 또 열어보게 된다. 복동이 서랍장 하나는 양호하다. 나머지 두 개는 안 열어봤다. 열어 보기 싫다. 복이의 서랍장은 반 이상을 꺼내 다시 정리했다. 남편의 서랍장도 마찬가지로 반 정도를 꺼내 다시 정리했다.

이 남자들, 다 큰 남자들, 빨래를 서랍장에 잘 못 넣는구나. 가끔 그들의 서랍장에 빨래를 넣어주자. 혼자 정리하는 날은 감독의 날이다.

착착착 가지런히 같은 방향으로...

왜 정리가 안 될까.

주부는 궁금할 뿐이다.

가득찬 서랍장은 잊기로 하자. 가끔 들여다 보고 정리가 필요할 때 하나씩 차분히 정리하면 된다. 조바심 내지 말고, 모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잔소리 늘어놓지 말자.

가득찬 서랍장 대신 빈 소파를 보자.

새벽의 소파는 고요하다. 어둠이 내려앉아 쉬는 사이 부지런히 일하는 세탁기와 건조기는 좁아터진 세탁실에서 언제나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빈 소파를 채우는 것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오직 하나의 운명이요 목표인 양 일하기를 쉬지 않는다.

곧 건조기의 알람이 울리면 빨래가 어둠의 휴식을 밀어내고 소파를 차지할 테다. 그러면 밤사이 어둠을 타고 내려온 찬 기운이 물러갈 테다. 따끈한 빨래를 소파에 사뿐히 놓아야지. 아침의 소파는 빨래가 제일 먼저 차지하겠지. 어둠 따위는 아랑곳 않고 태양의 떠오름도 아랑곳 않고 그저 또 묵묵히 그 자리에 앉아 있겠지.

갓 꺼낸 따끈한 빨래는 복실이가 아주 좋아하는데. 복실이에게 따끈한 빨래 이불을 덮어주면 ‘아 따뜻해! ‘하며 행복한 웃음을 지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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