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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줘 들어줘

엄마 감정 사용법

by 눈항아리


엄마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요?


아뿔싸! 굳은 얼굴, 씩씩 거리는 숨소리, 쿵쿵 거리는 발소리를 달복이에게 들켰다.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면 아이에게 나의 정신 상태를 곧잘 들키곤 한다. 물어도 대답 없는 꾹 다문 입술은 잠시 머뭇거렸다. 소리를 지를까? 뜬금없이? 뭐라고 말하지? 갑자기 왜 기분이 급 우울해진 걸까. 내 정신은 즉각적으로 나 자신에게 스스로의 상태를 알리지 않는다. 보고하고 바뀌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 하나로 휙 바뀌기도 하고 타인의 말 하나에 또 금방 좋아지기도 한다. 하루종일 멀쩡했는데... 맞네 갱년기 우울증. 아니 벌써?


가만 생각해 보니 개수대에 쌓인 설거지가 문제다. 저녁밥을 하러 왔는데 점심 설거지가 그대로다. 맞다. 설거지가 문제다. 나도 몰랐던 마음을 눈이 가리키고 있었다.


“설거지가 너무 많아서 그래. ”


있는 그대로 말했다. 보이는 대로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달복이에게 나의 상황을 좀 들어보라며 좀 더 푸념을 늘어놓고 싶다. 달복이는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요즘 다시 닌텐도 마인크래프트에 빠져있다. 인챈트는 마법과 같다며 재잘거렸었다.


“달복아 설거지 좀 해줘라. 응?”


아이는 설거지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릇 하나를 겨우 개수대로 옮기는 수준이다. 물컵에 물을 담아 옮기면 한두 방울은 꼭 흘리는 어린이다. 그런 아이에게 정말 설거지를 해 달라고 한 건 아니다. 그냥 어리광이다. 엄마 설거지가 많으니 좀 알아줘라. 그냥 그런 의미다. 달복이는 어쨌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


달복이는 게임에 정신을 쏟은 채 자연스럽게 자신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건조한 말투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효과가 나한테는 직방이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현실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설거지가 쌓여있어서 그랬구나. 저녁 준비를 하러 왔는데 점심 설거지가 쌓여 있어서 우울했구나. 설거지를 해야겠다. 달복이에게 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우선은 개수대를 모두 비웠다. 밥을 하고 국을 끓였다.


나에게 닥친 문제를 피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말했다. 그랬더니 닥친 상황과 내 감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달복이에게 말을 안 했더라면 아이는 엄마가 자신 때문에, 게임을 하는 아들 때문에 화가 난 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감정이 먹먹한 상태에서 설거지를 했더라면 그릇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꽤나 시끄럽게 우리의 귀를 긁어댔을 테다. 나의 심술보는 늘 그랬으니까.


저녁은 삼겹살 샤워를 하고 무사히 지나갔다. 기름 설거지도 잘 마쳤다. 그래, 쌓인 설거지 후 삼겹살 기름 설거지가 문제였는 지도 모른다. 나는 삼겹살 보다 목살이 더 좋다. 둘 다 기름 설거지 하기 싫은 건 똑같다. 맞다. 생각해 보니 나는 기름 설거지에 민감하다. 하수구가 막히는 이유 중 사장 큰 요인으로 돼지기름이 언급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80만 원이나 주고 업체를 불러 뚫은 이력이 있으니 기름을 잘 닦아내고 씻을 생각에 미리 귀찮음을 온몸으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피하지 말자. 도망갈 수 없다. 방학은 시작되었고 설거지는 쌓인다. 무수히 반복되는 일상, 일들에 치여 내 마음 들여다 보기를 게을리하지 말자.


엄마인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땐 솔직히 말하자. 때로는 설거지 때문이 아닐 수도 있지만 쌓인 설거지 탓을 해도 된다. 달복이도 엄마가 가끔 설거지가 하기 싫은 걸 안다. (매일 그러면 좀 곤란하기는 하다. 밥을 해주기 싫어한다고 느끼지 않을까? )


굳은 얼굴, 씩씩 거리는 숨소리, 쿵쿵 거리는 발소리는 ‘내가 힘든 걸 알아줘.‘라는 표시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몸에게 표현하는 수단이 아닐까. 마음이 하는 말을 잘 알아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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