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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 아들의 생일을 잊었다

by 눈항아리


불타는 토요일

단체 게임을 했다.

나만 빼고.

으레 있는 일이라

일요일 아침은 푹 자라고

깨우지 않았다.


누워서 뒹굴뒹굴

일요일 꿀알바를 하는 느낌으로 나도 굴러다녔다.

오호!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을 먹으면 되겠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좋을시고!

이렇게 따뜻하고 폭신하고 편안한 느낌이라니.

일요일의 이불은 더욱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아침을 깨우는 벨소리

주말 아침부터 누구일까.

여보세요?

시어머님이시다.

복이 생일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을 잊다니!

가족 중 첫 번째 생일을 맞기에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데...

올 겨울은 정말 정신이 없다.

그래도

하루가 가기 전에

하루를 시작하며 알았으니

다행이다.


복이는 방년 14세, 중 2 님 되시겠다.


돈가스와 초밥 파는 가게에서 식사를 했다.

아이들의 선물은 현찰이다.

돈을 달란다.

기다랗고 고운 두 손을 나에게 내밀었고,

즉석에서 만 원짜리 석장을 하사했다.

할머니, 고모와 함께한 가족 식사 후

문을 막 나선 참이었다.

아들은 우리에게 정해져 있는 현금 선물보다

5천 원이나 더 받았다며 신나 했다.

심지어 형에게 자랑을 했다.

아들아 엄마가 너무 짜서 미안하다.


복이의 생일을 축하해 주느라

아침 겸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저녁은 못 먹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밤 9시가 되어 케이크를 후 불었다.

크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우리는

파리바게뜨에서 롤케이크 하나를 사 왔다.

14세 숫자 초에 불을 붙이고

막대기 초도 있는 대로 꽂고 불을 붙였다.

복이는 촛불 부는 것도 쑥스러워한다.

그래도 불 2개는 불어 껐다.

나머지는 신난 동생들이 마구 입바람을 불었다.


아직 촛불 불어 끄는 걸 좋아하는 ‘아기’들이 우리 집에 둘이나 있다니.

복이도 어릴 땐 촛불 끄는 걸 좋아해서

제 형이랑 복이랑 촛불 불게 해주려고

노력하기도 했었다.

성냥, 라이터 못 켜던 나였다.

이제는 라이터도 잘 켜는 멋진 엄마가 되었다.



사달이 난 밥통의 밥은 건들지도 못했지만

탄 빵은 그럭저럭 성공적으로 굽고 자르고 해서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 미역국 대신 라면을 끓였다.

미역은 안 든 라면이었다.



복아.

엄마가 생일을 깜빡해서 미안해.

다음엔 연초에 꼭

가족들의 생일을 달력에 적어놔야겠다.

어머님은 커다란 달력에 큰 글자로 적어놓는다.

나도 핸드폰 달력에 꼭 표시해 놔야지.



복아 생일 축하해.
엄마가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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