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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지갑은 어디에

나에게서 잊힌 기억들

by 눈항아리


쭉 잊고 있었다. 통장 지갑을 잃어버렸다. 한동안 통장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자체도 잊고 있었다.


통장 지갑을 가방에 넣어 들고 다녔다. 무거웠다. 그래서 어디에 잘 던져두었다. 던져둔 기억은 있는데 ‘어디에’가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왜 다른 기억은 다 나는데 ‘어디에’라는 구멍이 생겨버린 것일까. 벌써 열흘도 더 된 일이다. 은행에 가려고 들고 나왔는데 몇 날 며칠 은행 볼일을 미루다 그 사달이 났다.


그건 꼭 내 문제만이 아니다. 너무 바빠서 그렇다. 은행이 너무 빨리 문을 닫아서 그렇다. 은행에 갈 시간만 엿보고 있었는데 부족한 서류를 더 해가지고 가야 했다. 주민센터 먼저 가야 해서 그랬다.


통장을 집중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3일 동안 집과 가게를 넘나들며 뒤졌다. 잘 뒀으니 어디 잘 있겠지. 잘 둘 수 있는 곳부터 뒤졌다. 집과 가게, 책상과 선반, 책장 구석구석, 뒤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까만 틈새 등 뒤질 곳은 모두 뒤졌다. 통장 지갑은 안 나왔다. 통장 지갑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는 통장 두 개를 더 찾았다. 나중에 통장 지갑을 찾으면 같이 끼워 두려고 가방에 넣었다. 한 번씩 통장을 잃어버리는 것도 참 괜찮은 방법이다. 정리정돈이 한 번에 된다.


마지막으로 가방을 뒤졌다. 가방은 몇 번이나 둘러보고 뒤져보았던 곳이라 혹시나 하면서 뒤집어 탈탈 털었다. 그건 큰 아이의 초등학교 가방이다. 수납 주머니가 좋은 책가방이다. 가방에 넣어두었던 통장 두 개가 나왔다. 에잇, 그 사이에 통장 두 개를 가방에 그냥 넣어두었던 것을 또 깜빡했다. ‘통장을 이렇게 가지고 다니다 잃어버리면 안 되니 잘 넣어둬야겠군’ 하면서 지퍼가 달린 그물 수납주머니에 통장을 넣었다. 딴에는 지퍼가 달려있으니 가방에서 절대 쏟아지지도 않고 잃어버리지 않을 곳이라 생각했나 보다. 그리고 통장 두 개를 그물 주머니에 넣는 순간 묵직한 책 하나가 손에 잡혔다. 천의 감촉과 두툼한 두께가 익숙하다.


찾았다!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땐 비슷한 물건을 들고 사고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자. 나는 멀쩡했던 것이다. 멀쩡한 게 맞겠지? 여하튼 은행은 정말 가기 귀찮다.


2월 14일 은행 볼일은 잘 봤다. 서류는 3개월이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일찍 떼놓은 어떤 서류는 11월 15일 날짜가 찍혀 있었다. 찾아서 다행이다. 주민센터에 다시 갈뻔했다.





내가 잊은 시간들은 통장지갑을 던져 놓았던 순간부터가 시작이다. 그 후 가방에 잘 넣어 둔 것까지가 생각이 안 난다. ’ 어디에‘만 생각이 안 난 것이 아니다. 일은 바로바로 처리하자. 늘 놓던 곳에 두는 습관은 참 좋다. 냉장고를 찾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다. 가방에서 못 찾으면 냉장고를 뒤지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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