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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에게 감사를

by 눈항아리 Feb 25. 2025

아침에 일어나 밤사이 돌아간 건조기를 한 번 더 돌렸다. 실내에 빨래를 널 공간이 없어 빨래의 수명은 생각지 않고 바싹 말린다. 세탁기는 하루 두 번은 돌려야 빨래 나오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다. 때문에 건조대에 널 수 없다. 그 빨래를 널려면 세 개의 건조대를 거실 한가득 펼쳐놓고 출근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 넷의 빨래란 그렇다.

그나마 건조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건조기에게 감사를!

어릴 적 살던 집에는 빨랫줄이 있었다. 결혼 후 아파트에서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나도 한때는 빨랫줄을 꿈꿨다.


처음 살던 우리의 주택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텃밭에는 오이와 호박을 토마토를 심었다. 아이들과 상추를 심어 뜯어먹었다. 마당의 반은 텃밭, 반은 보도블록이 깔려 있었다. ​보도블록 마당 위로 빨랫줄을 걸었다. 빨랫줄에 빨래를 널었다. 햇볕 좋은 마당은 참 좋았다. 건조대도 마당에 두고 빨래는 햇볕에서 잘 말랐다. 달복이는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빨래를 털어 개는데 커다란 벌레가 나타났다. 옷 사이에서 스멀스멀 기어 다니고 있었다. 나는 벌레를 무서워한다. 벌레가 무서워 꿈에 나타나는 사람이다. 몇 번 그런 일이 있고선 빨래를 밖에서 말릴 수가 없었다. 감나무에는 마침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장수말벌이 매일 네댓 마리씩 무리를 지어 놀러 왔다. 그 애들은 감나무에 앉아 수액을 먹고 감을 먹고 갔다. 무서워 나갈 수가 없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니 처마에 벌집이 생겼다. 빨래를  더더욱 빨랫줄에 걸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몇 번의 주택 이사를 했다. 실내 건조를 하다 건조기를 만나게 되었다. 아이가 더 생겨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 건조기였다.


참 잘한 선택이다. 남편이 건조기를 사자 이야기했을 때 나도 선뜻 찬성하지 않았다. 옷의 수명이 단축되고, 사이즈가 주는 등의 단점을 찾아본 터였다. 그런데 건조기는 그런 단점을 모두 이기고도 남는다.

건조기가 없는 빨래의 세계는 이제 생각할 수 없다. 건조기가 없을 때는 몰랐던 세상이다.


그런 건조기가 끽끽 거리며 아픈 소리를 냈다. 너무 혹사시켰나 보다. 수리 기사가 와서 보곤 먼지를 제거한 후 샤워도 시키란다. 먼지통을 주기적으로 씻어 말려줘야 한단다. 이제 건조기는 아픈 소리를 안 낸다. 먼지통 샤워는 딱 한 번 시켜줬다. 잘 챙겨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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