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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복실이 보행 독립의 날이 다가온다

by 눈항아리

아기는 가만 누워있다 뒤집는다. 배밀이를 시작한다. 뒤로 기어가다 앞으로 간다. 회전하여 옆으로도 간다. 어느 날 앉더니 일어선다. 잡고 일어서고 잡고 걸어 다닌다. 돌 무렵이면 걷는다. 엄마가 업고 메고 안고 이동하던 아이가 걷는다. 바깥나들이 때 손을 잡고 걷는다. 때로는 손을 뿌리치고 뛰어간다. 부모의 고난이 시작된다. 어디로든 마음대로 가는 아이. 걷기 전 기면서부터,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그때부터 부모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스스로 움직이고자 하는 것은 동물이 가지는 본능이다. 부모는 자녀의 안전을 위해 행동반경을 제한한다. 안전띠라는 이름으로 줄을 맨다. 아기띠, 유모차 안전벨트, 자전거 안전바, 식탁, 의자, 보행기 등 각종 육아 용품에는 안전을 위한 줄이 달려있다. 부모의 편리를 위해 아이를 구속할 수 있는 줄이다. 그 줄이 없을 때에는 엄마의 따뜻한 손으로 아이의 여린 손을 꽉 움켜쥔다.


아이들이 걷기 시작하면서 화장실에 그렇게 들어가려고 했다. 말통 2개에 물을 채워 화장실 문 앞에 놓아두었다. 현관 신발은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현관 신발 놓는 곳에 울타리를 치고 싶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에 울타리를 쳐놓고 생활하는 집들도 보았다. 동생네 아기들은 엄마 아빠가 잠든 틈에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물을 가지고 자주 논다고 했다. 스스로 걸어 다니는 지뢰와 같은 아이들.


우리 아이들은 좀 늦은 아이들도 있었지만 15개월쯤에는 다 걸었다. 하지만 혼자 걷는다고 걷기 독립이 되는 게 아니다. 위험한 곳으로 가지 않도록 눈에 불을 켜고 지켜야 한다. 밖에 나가면 손을 붙잡는 건 안전으로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다. 미아방지 가방이라는 이름으로 줄을 매고 다니기도 한다. 족쇄 같아 보인다. 어찌 보면 개목걸이 같다. 아이를 구속하는 줄을 채우고 다녀야 할까 생각도 들 테다. 그러나 혈기 왕성한 아이들의 돌발행동은 상상을 초월한다. 초원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 딱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아이마다 성향이 달라서 한 명으로도 벅찰 수 있다. 둘, 셋, 넷이라면? 세 쌍둥이, 네 쌍둥이들을 줄줄이 구속구를 채워 다니는 부모를 보며 나는 매우 공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이 안 될 수 있다. 무슨 부모가 아이들을 가둬 키우는 줄 알 테다. 하지만 요즘의 바깥 도로 사정은 아이들이 걷고 뛰기에 적합하지 않다. 계단은 왜 그리도 많은지, 아이들은 왜 계단만 보면 올라갈까. 쌩쌩 달리는 모든 것들로부터 여러 아이들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아이들은 나가고 싶어 한다. 혼자 걷고, 달리고 싶어 한다.


나의 작은 아이들은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걷기 독립을 했다. 보행 독립. 부모가 묶어놓은 줄을 풀고 홀로 걷는 행위를 보행 독립이라 말하고 싶다. 초등 1학년, 2학년이면 대부분 혼자 학교 정도는 다닌다. 아들 삼 형제가 그렇게 줄줄이 걷기 독립을 했다.


어떤 아이는 학교 가기 전에 엄마의 손을 놓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 들어가며 걷기 독립을 한다. 어떤 아이는 열 살이 되도록 엄마의 손을 잡고 다닌다. 우리 넷째 복실이다. 복실이는 3월에 3학년이 된다. 복실이의 보행 독립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개학 일주일을 앞두고 부랴부랴 혼자 다니기 연습을 하고 있다. 늘 엄마 손, 아빠 손, 첫째 오빠 손, 둘째 오빠 손, 셋째 오빠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이제는 그 손을 놔줘야 한다. 미리 연습을 좀 할 걸 그랬다. 코 앞으로 다가온 개학에 이제야 후회가 밀려온다.


마음 한 편에서는 평생 손을 꼭 잡고 다니고 싶다. 그건 부모의 욕심이라는 걸 안다. 나의 독립을 운운하면서 아이를 왜 놓아주지 못하는 걸까. 그건 안전이라는 미명 아래 인간의 당연한 권리, 동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움직일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더 이상 안전이라는 동물원에 아이를 가두어 놓고 키울 수는 없다. 더 늦기 전에 풀어줘야한다.


내가 놓아만 주면 아이는 자유롭게 마구 달리고 훨훨 날아다닐 것을 안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더 허하다. 꼭 움켜쥔 내 빈 손이 조금 많이 허전하다. 아이가 혼자 걸어다니면 홀가분할 줄만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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