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눈물을 흘린다

by 눈항아리

겨울의 끄트머리가 유난히 길다. 먼 산은 겨울을 놓지 못한다. 하늘 아래 태백 준령은 아직 하얀 설경을 자랑한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천상의 도시 같다. 먼 산의 순결한 모습을 눈에 담으며 바쁜 출근길, 일하는 주부는 마음을 정화해 본다. 차창에 시선을 뗄 수 없다. 다행이다. 운전대는 남편이 잡았다.


평지는 이미 봄을 준비하고 있다. 겨우 내 땅이 품었던 국화 순이 파릇하게 올라오고 있다. 봄은 천천히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해안에 가까운 너른 평야에는 벌써 검정 비닐을 씌웠다. 거름 내가 한창이더니 부지런한 농부들은 어느 날 비닐 멀칭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금배추를 수확하던 밭에 뭘 심을까 궁금하다. 이른 감자를 심으려고 그러나?


산 아래 우리 집은 상황이 다르다. 종일 해가 쨍한 밭에도 눈이 남아 있다. 어제는 종일 날이 따뜻해 드문드문 누런 흙이 드러났다.


산 아래 응달진 마당엔 아직 눈이 쌓여있다. 트럭은 비탈길을 올라와 창고 옆 마당에 세워 놓았다. 차를 구출하기 위해 남편은 어제 비탈의 눈을 포클레인으로 긁었다. 오늘은 타고 나갈 수 있을까 하였다. 그러나 그늘진 마당에서 안온하게 흰 빛을 발하는 눈밭은 하루 종일 따뜻한 기온에 눈물을 흘렸다. 겨울 가뭄에 산은 눈을 다 머금고 뱉어내는 눈물이 없다. 그러나 시멘트 마당은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줄줄 흘리고야 만다. 마당에 작은 도랑물과 같은 눈 물자국이 여러 갈래 생겼다. 그리고 밤 사이 영하의 기온에 화답하며 눈 물이 빙판을 만들었다. 시린 눈의 물이 얼어붙어 비탈길은 빙상경기장과 같이 반질반질했다. 지난해 눈이 펑펑 올 적에 아이들이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던 그 비탈길이다.


트럭은 아직 구출하지 못했다.


북쪽을 바라보는 지붕 위에도 눈이 한가득이다. 위쪽부터 천천히 눈이 내려온다. 후드득 떨어져 내려오지 않고 뚝뚝뚝 눈 물을 떨군다. 날이 춥다면 고드름이라도 멋들어지게 매달릴 텐데 기온이 높으니 바닥을 치며 하루 종일 ‘눈물’만 흘린다. 가는 겨울이 못내 아쉬운 하얀 눈의 눈물이다.




번잡한 도시의 겨울 눈은 미처 흘러내릴 새도 없이 치워진다. 눈 물은 금세 말라 버리고 증발하고야 만다. 짧으나 강력한 첨벙거림, 질척거림을 우리는 기억한다.


겨울 산기슭,

눈 물은 서서히 땅의 가슴에 스며든다.

천천히 흘러내린다.

‘눈물’을 흘린다.

지붕, 응달진 마당,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겨울이 운다.


겨울이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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