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꽃비가 내리는 병원 주차장을 걷습니다

by 눈항아리

꽃비가 내립니다.

차디찬 아스팔트 주차장을 걷습니다.

아들과 나란히 꽃비를 맞으며 걷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걷는 날이 오네요.

그러나 우리의 발걸음은

늘 조금은 어긋나 있습니다.

앞서가는 엄마와 뒤따르는 아들입니다.

부러 발걸음을 좀 늦추면

아들이 옆에 와 설까 했는데,

더욱 흐느적거리며

따라오지 않는 아들의 발걸음입니다.


“왜 꽃구경을 가요? 그건 자살 행위야. “​

어느 날 밤 벚꽃길을 차로 달리며

모두 함께 집으로 가는 길

둘째 복이가 한 말입니다.

첫째 아이와 남편은 수긍하며 ‘하하하‘ 웃었습니다.

비염인들의 이유 있는 의견 일치입니다.


우리의 출퇴근길은 꽃이 만발입니다.

밤이 되면 나무마다 주렁주렁

훤한 등불이 달렸습니다.

꽃잔치 마당을 지나며

차 창 너머로 겨울의 눈꽃을 감상하듯

시린 우리의 봄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꽃비가 내리는 병원 주차장을 걷습니다.

어제는 차디찬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아스팔트 바닥이 칙칙합니다.

꽃잎은 나풀거리며 날아

온 바닥을 적십니다.

아들과 한 걸음 떨어져 걷는 어미의 가슴에도

차가웁게 꽃비가 내립니다.


​복이는 밤새 아팠습니다.

눕지 못하고 앉아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새벽 3시,

아이의 부름을 받고

잠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강제 소환되었습니다.

덜 깬 눈을 비비며 약통을 뒤져

약을 달라는 아이 손에

진통제를 쥐여 주었습니다.

중이염이 심합니다.

비염이 심하면 중이염이 된답니다.

새벽에 대충 약 하나 건네주고 만 것이

그제야 미안해집니다.

아이는 링거를 한참 맞았고

고막을 찢었습니다.

차가운 꽃비가 내리는 날

대면대면하기만 한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둘이서 나란히 앉았습니다.

병원 대기실 복도에 앉아

서로 각자의 핸드폰에 집중했습니다.

이 봄날이 야속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들의 커피를 훔쳐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