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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커피를 훔쳐 먹었다.

by 눈항아리 Apr 08. 2025

복실이는 생글생글 웃는 엄마를 보며 물었다.  

“엄마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조회수가 막 올라가요? 무슨 일인데요? 네? ”


“복실아 엄마가 복이 오빠 커피를 훔쳐 먹었어. “


집 안에 퍼지는 커피 향이 너무 좋았다. 나는 다만 복이의 보온병 뚜껑을  닫아주려고 했을 뿐이다. 커피가 너무 가득 담겨 있어서 아주 조금만 따라서 마셨다. 몰래 마시는 커피는 아들 녀석이 주말에 타주는 커피보다 더 맛있었다.


“복이 오빠한테는 비밀이야, 쉿! “


복이는 보온병을 매일 챙겨간다. 물병이 아니다. 커피 병이다. 커피를 보온병에 챙겨가기 시작한 이후 등교 준비를 하면서 매일 아침 중학생 아들의 커피 타기 의식이 거행되고 있다. 매일 아침 참새 방앗간 들르듯 드나들던 편의점은 그냥 지나친다. 든든한 물병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집에 놔두고 흘리고 잊고 다니던 아이가 커피 병은 알뜰하게도 챙긴다. 진짜 커피 병病이다.


중학생 아들의 카페인 섭취를 줄이기 위해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머리를 짜내고 있었다. 작은 더더더 작은 보온병을 찾아보았다. 복이에게 말을 하려고 했는데  말도 꺼내기 전에 아들이 선수를 쳤다. 350ml보다 더 큰 물병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도 큰데 더 큰걸 원하다니! 절대 안 된다고 하며 150ml의 크기로 바꾸는 것이 어떠냐 물어봤다. 아이는 350ml가 좋다고 했다. 우리의 타협점은 350ml가 되었다. 아이는 늘 부모보다 협상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보온병에는 드립백 2개 분량의 커피가  채워진다. 2잔. 그러니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말자. 아침에 준비한 커피만 마시자. 그것이 우리의 또 다른 타협안이었다. 밖에서 뭘 더 사 먹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오후에 가게에 와서 엄마에게 커피를 달라고는 하지 않는다. 대신 커피 뺀 단 음료를 먹는다. 레모네이드, 샷추가 없는 토피넛라테, 아이스크림... 뭐가 더 나은 건지 나는 모르겠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더 아들의 커피를 줄여볼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 아침의 커피를 발견한 것이다. 싱크대 준비대에 올려놓은 보온병 안에서 구수한 커피향이 올라와 콧구멍을 지극했... 아니, 가득 채워져 있어 터질까 봐 그런 거다. 까만 물이 병의 9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실 생각이 없었다. 그저 아들이 뜨거운 커피에 화상을 입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컵에 따르다 보니 급류를 탄 커피물이 나의 컵으로 훅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온 것이다. 절대 고의가 아니었다. 홀짝거리며 마시는 따신 커피는 최고였다.



우리 아들이 나름 커피 내릴 때만은 섬세하다. 먹을 때는 질질 흘리며 먹는다. 입가에 묻히고, 입에서 바로 흐르고,  옷에 흘리고, 바닥에 흘린다. 뭐가? 무엇이든. 밥상 위에 흘리는 건 양호하다. 아이의 흘림은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저울에 올려놓은 서버 혹은 컵 이외에는 한 방울의 까만 액체도 흘리지 않는다.


드립백 2개를 뜯어 자신의 보온통에 넣고 등교 준비를 하는 아들은 평소에는 가장 늦게 출입문을 나선다. 그런데 요즘 커피를 내리고 물통을 챙기는데도 준비 시간이 똑같다. 스스로의 의지가 중하다. 그럼 시간은 저절로 생기는 것 같다. 아침의 온 정신을 커피에 쏟고 있는 중학생이라니 참.


오늘도 복이는 세상 귀찮은 표정으로 조수석에 앉았다. 나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계속 재잘거렸다. 드디어 학교 앞에 도착한 복이는 파이팅을 외치는 내  목소리를 뒤로하고 차 문을 평소보다 세게 닫았다. 그래도 나는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카페인으로부터 내 아이를 조금은 지켜냈다. 30ml만큼의 쾌거.


터덜터덜 걸어가는 복이를 지나쳤다.

아침엔 늘 힘이 없는 중학생이다.

‘복아 부리부리하게 눈에 힘을 팍 주고, 다리는 힘차게 씩씩하게 응?’

우리 복이에게 카페인 말고 다른 활력은 언제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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