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아래에는 긴 나무 의자가 있다. 나뭇잎이 만들어 주는 그늘에 앉아 쉬는 사람들은 대개 담배를 피운다. 재떨이만 나무 아래 놓지 않았어도 더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쉼터가 되었을까. 참 아쉽다.
그렇다고 애연가들에게만 좋은 쉼터가 될까. 사람은 그저 가끔 지나가는 객이다. 목련 나무 그늘을 떡하니 차지하고 돗자리를 깐 녀석은 덩굴 식물이다.
핑크 나팔꽃인가 하여 오가며 그 아이를 나팔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나팔꽃이 아니고 애기메꽃이란다. 연한 핑크빛 자태가 아이 피부 같이 연약해 보인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던 날 애기메꽃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가로이 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었다. 아~~ 부럽다. 나는 종종거리며 바쁜데 푹신한 둥굴레 잎사귀 침대에 위에 여린 몸을 누이고 느긋하게 누워있는 녀석. 바람이 커다란 목련 연둣빛 잎사귀를 흔들어 주면 슬쩍슬쩍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을 구경한다.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신록의 피서를 즐기는 애기메꽃이 부럽기만 하다.
튼튼한 담쟁이는 가게 사장의 미움을 많이 받는다. 건넛집 할머니도 보기만 하면 뜯어버리라고 그런다. 앞마당에서 뒷마당으로, 길을 건너 사방으로 제 영역을 넓히는 담쟁이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줄기가 뻗어 나가며 모든 것을 휘어 감는다. 무엇이든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진 담쟁이. 단단단 나무뿌리가 된 것처럼 덩굴은 목질화되어 손으로 뜯으려면 힘깨나 줘야 한다.
애기메꽃은 그저 연약한 초록 줄기를 가지고 있다. 덩굴손은 살짝 말려 있는데 손가락으로 힘을 주면 상처를 입을 것 같다. 약한 것에는 마음이 열리는 걸까? 영산홍이 활짝 피었을 적에도 영산홍 꽃을 뚫고 하나 둘 올라오던 애기메꽃 덩굴줄기를 귀엽게만 바라보았다. 연핑크 가녀린 꽃까지 피우니 어찌 예쁘지 않을까.
밤새 시골집에는 빗소리가 지붕을 두들겼다. 양철 지붕도 아닌데, 시멘트를 들이부은 양옥집이구만 빗물 때리는 소리가 컸다. 바람도 거세게 불어댔다. 개울가 키다리 아카시아도, 뒷산 더 키 큰 아카시아도 무거운 포도송이 같은 하얀 꽃을 주렁주렁 달고서 힘겹게 건들거린다.
출근길 바다가 보이는 봉수대 언덕을 수놓은 빨간 장미 울타리. 머리가 무거운 빨강 장미들이 끄덕끄덕 또 건들거린다.
아침 출근하니 춥다. 긴 팔을 하나 껴입고 왔는데도 추워서 온풍기를 틀었다. 따뜻한 바람맞으며 모닝커피를 한 잔 즐기는데 마당에 선 나무가 바람에 건들거린다. 나무줄기를 부르르 떨어대며 춥다고 한다.
마당에 나갈 때면 짧은 양말과 바지 사이 발목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다. 두 번 접어 올려 허옇게 드러난 손목으로 찬바람이 들어온다. 소매를 내리고 애기메꽃을 바라본다. 옷도 못 입혔는데... 가녀린 애기메꽃이 짠하다.
날씨가 이상하다.
안반데기에는 눈이 와서 농작물이 파묻혔단다. 속상한 날씨다.
그래도 요 녀석 수풀 사이에서 바람을 용케 피했다. 장하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둘러싸인 건물 사이로 바람을 타고 풀씨가 날아왔다. 그중 몇 개의 씨앗이 흙을 찾아 꽃을 피웠다. 주인의 억센 손에 잡아 뜯기고 비바람에 움츠리면서도 살아남은 아이들. 우연히 우리 마당에 떨어져 자라난 풀꽃. 우리의 운명과도 같은 만남. 이런 게 인연이 아니고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