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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May 03. 2024

씀바귀 터줏대감

 


씀바귀

노랑 민들레는 홀씨가 되어 날아갔다. 그 옆 자리에 민들레 동생인척 노랑 씀바귀가 꽃을 피웠다.


앵두나무 아래 애플민트랑 같이 오손 도손 사이좋다. 정원석 사이 쑥과 함께 쑥덕쑥덕 거리기도 하고, 담장 아래 틈새에서 홀로 고독을 씹는다. 테라스 아래 좁다란 흙더미에도 노랑 물결이다. 마당 가를 기웃거리더니  이제 정원 중앙까지 차지하고 터줏대감 마냥 들어와 앉아 있다.


샛노란 색깔을 하고 튀지 않기가 어려울법한데 어울려 있는 모양새가 수수하니 예쁘다. 귀부인 목련, 꽃의 여왕 모란, 꽃의 물결과도 같은 군무 영산홍, 고혹적인 커다란 보라색 붓꽃 등. 화려한 정원 꽃 사이에서 제 존재를 알려야 하는 녀석의 전략은 순수인가 보다. 모여 있으나 하나씩 뜯어보아도 참 곱다. 꽃말처럼 참 순박하게 생겼다. 오며 가며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잡풀이라 생각하고 뽑아버렸다면 아쉬웠을 자태다.


가만 서서 우두커니 보고 있으면 대문 앞에 나와 소일하던 옆집 할아버지도 가만 서서 신기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럼 꽃에게서 눈을 떼고 어르신께 꾸벅 인사를 한 다음 얼른 지나쳐간다.


노랑 애들이 너무 예쁘지 않냐며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여주니 잡초가 많다며 정리를 해야겠단다. 어이쿠 녀석들의 생존에 내가 걸림돌이 돼버리는 걸까. 뽑지 말라고 사정사정을 했다.


오후 시간이 되니 화단에 그늘이 진다. 아침에 활짝 폈던 꽃이 한 둘 남기고 사라졌다. 낮잠 자는가 보다. 오후부터 아침까지 잠자는 걸까. 아침에 또 활짝 피는 걸까? 꽃이 부채 접힌 것 마냥 접혀 모아 지니 잡초 같아 보이는데 남편이 지저분하다고 다 뽑아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부러 옆에 가서 사진 몇 장을 더 찍어와 내게 관리받는 녀석들이라고 알려주었다. 내일이면 다시 필테니 절대 뽑지 말아 주라.



며칠 활짝 펴 마음속에 따뜻한 설렘을 주었던 아이들. 쌀쌀한 바람을 피해 포근한 이불 속에 들어가 코 잔다. 한들한들 요람을 흔들며 고요한 자장가를 불어주는 오후의 바람에 나도 같이 나른해진다.


씀바귀




그런데 녀석들 꽃잎을 접은 모양이 영 이상하다. 말라비틀어지고 희끗희끗 흰머리도 보인다. 찬찬히 살펴보니 흰머리는 솜털 같다. 이 녀석도 민들레처럼 날아갈 준비를 하나 보다. 뚫어져라 들여다보니 홀씨를 터뜨린 녀석도 한 둘 있다. 엉성하게 붙어 있는 앙상한 날개가 새끼손톱보다도 작다.


날 수 있을까?


어느 바람을 타고 요 가냘픈 몸으로 우리 마당까지 날아왔을까. 올해엔 멀리 날아가지 말고 마당 어귀 어디든 살포시 내려앉으면  좋겠다.


데쳐서 무쳐 먹고, 김치해 먹고,  차로 먹고, 약으로 먹는 귀한 나물이라는데 먹을 줄을 모르니  보고 즐길 뿐이다.


꽃으로 먼저 만난 씀바귀.


내년 봄 새싹이 올라오면 초록 잎을 알아볼 수는 있을까?


씀바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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