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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Apr 26. 2024

애절한 목소리


아스팔트 좁은 골목길에 차와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양쪽으로 주차된 차들 사이를 자동차 두 대가 아슬아슬 비켜가기도 한다. 손을 잡은 엄마와 아이도 그 길을 걸어간다. 둘러보아도 발 닿는 곳이라고는 모두 포장도로. 지구의 내부 구조는 핵, 맨틀, 지각이라고 배웠는데 지각 위에 포장 도로 하나를 더 얹어야 맞는건 아닐까.


그나마 흙을 밟을 수 있는 곳은 주택 중간 중간 어느 순간 들어와 자리한 잘 정돈된 놀이터 겸 공원이다. 놀이터에서 흙을 밟을 수 있었던가? 다시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 바닥은 죄다 인공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래가 있는 놀이터를 특별히 모래 놀이터라 부른다.  흙은 나무가 자라는 곳, 작은 관목이 자라는 곳에 일부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곳의 나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 나가며 푸르름을 자랑한다. 뿌리는 대지로부터 바람을 끌어와 숨을 쉬는 걸까. 자신의 숨을 살랑 바람으로 실어와 그늘아래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는 여유로움을 가진다.


가로수는 답답한 보도블럭을 이고 산다. 좁은 숨구멍에 의지에 답답한 모양이지만 최선을 다해 자란다. 하늘은 높고 자라날 공간은  무한이다. 그러나 도로로 뻗어 나가거나, 건물의 간판을 가리거나, 햇빛을 가리거나, 전선을 건드린다면 가차없이 잘려 나간다. 인간의 쓸모에 의해 심겨져 인간의 불필요함에 의해 잘려나가는 가지들을 철철이 마주해야한다.


요즘은 시청에서 계절별 꽃을 심는다. 한해살이 풀을 땅이 아닌 커다란 화분에 심어 길가에 놔 준다. 밥사발 처럼 생긴 커다란 화분에 색색이 꽃들이 피어난다. 들길을 걸으면 풀들이 무성한데 ...길가의 화분이라니.


주택가 골목길에는 나무랄 것이 없다. 원래 없었는지 하나씩 베어져 없어졌는지는 모른다. 큰 도로까지 나가는 길 나이가 꽤 많은 것 같은 은행나무 두 그루만이 있을 뿐이다.


초록 나무는 주택 담장 안에 자리한다. 골목길을 거닐며 만나는 담장 안의 귀한 나무를 구경하는 재미도 좋다.  그중 가을날 담장 너머 설핏 보이는 잘 익은 빨간 석류를 가장 좋아한다. 봄날의 향기를 머금은 탐스러운 라일락도 좋다. 담장 위를 훌쩍 넘어가는 키큰 감나무는 어떤가. 주황 열매를 보면 군침 삼키는 이가 여럿이다. 어릴적 뒷집에는 호두 나무가 있었다. 대문이 열려있는 날이면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안 마당의 초록 열매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우아하게 앉아 있는 탐스런 장미를 가진 담장은  매력이 넘친다. 밤알만한 튼실한 대추가 열리는 마당도 있다. 잎도 없이 노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모과나무는 손을 기다랗게 늘여 하나 따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게 한다. 모과 나무는 왜 그리도 키가 큰 걸까.


다른 이들도 내 마음과 같은 것일까. 열린 마당 자투리 공간에 자리한 가게 마당 정원. 하얀 목련이 피면 중년 부인들이 오가며 나무를 친구삼아 사진을 찍는다. 영산홍이 붉어지면 또 친구를 데리고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뒷마당에 무화과가 열리면 참새와 벗삼아 같이 따먹는다. 빨간 앵두는 손이 저절로 간다. 아침이면 목련 나무 아래 나무 의자에 햇볕이 든다. 집게를 들고 다니는 파마머리 예쁜 부인들이 앉아 쉬곤 한다. 새들은 이름모를 사철 나무 위에서 뛰어논다. 현관문 앞 테라스 아래 심어둔 애플민트와 페퍼민틀르 하나씩 따서 향을 맡는가 하면 몇 뿌리 캐달라고 하기도 한다. 길을 놔두고 가게 마당을 가로질러 쪽문으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가게 앞 열린 마당은 모두의 공간이다. 심지어 흡연인들에게도 열린 마당이다. 정원 곳곳에 담배 꽁초를 투척하는 걸 지켜보느니 차라리 재떨이를 놓자고 결론을 내렸다. 흡연인들은 나무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연기를 뿜어댄다.


한줌 흙으로 만들어진 삭막한 정원. 그곳에서 우리는 짧은 쉼을 갖는다. 산에 사는 자유로운 나무는 꿈도 꿀 수 없고 공원 속 그늘이 되어주는 우람한 나무도 없다. 빼빼마른 나무가 주는 작은 상쾌함이나마 오가며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우리의 작은 쉼터, 정원의 초록은 늘 안타깝다. 사철 푸른 나무들은 매년 잎새도 가지도 까까머리로 이발을 당한다. 여름철 담장을 넘어가는 말썽쟁이 무화과는 뒷 담장 허리 반 만큼 잘려나갔다. 살아 보려고 잎이 나며 작은 열매 한 알을 먼저 매달았다. 민트와 쑥, 국화는 무릎 높이로 잘려나간다.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한줄맞춤으로 예쁘장하게 잘라준다. 영산홍은 더 큰 원예용 가위로 다듬어 준다. 아줌마 파마머리 자르듯 예쁘게 다듬어 주어야 한다. 이름 없는 잡초의 수난살이야 말해 무엇할까. 그래서 잡초도 하나하나 봐주기로 한다. 가만히 보면 그녀석도 특별하고 예쁘다. 절대 잡초 뽑기가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일이 끝나면 차를 타고 숲이 우거진 산골 우리집으로 간다. 이 아이들은 삭막한 정원에 뿌리를 내리고 묶여 있으니 그들의 애절한 바람이 더 간절한 걸까. 정원 속 꽃은 더 짙고 향은 더욱 그윽하다. 알알이 맺히는 열매는 더 소중하다. 하나하나 존재를 뽐내는 그들을 그래서 더 가까이에서 봐주고 싶다. 꽃이 피면 벌들에게 인도해 주고 싶고 바람이 불면 멀리까지 날려보내주고 싶다. 그들도 너른 초원 깊은 숲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었을까? 숲을 알까? 바람이 전해준 소식을 들었을까?


간절한 바람을 누구에게 전해주어야 할까. 꽃이 유난히 고왔던 봄날 그들의 애절함을 들었다.


날 보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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