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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휴지심을 누가 옮겼을까?

휴지심 재활용 모으기

by 눈항아리

화장실에 휴지심이 많다. 대체 어느 녀석이 멀쩡한 휴지통을 놔두고 매일 저런 수고를 하는 걸까. 궁금하지만 꾹 참았다. 누구긴 누구겠는가 복동이거나 복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범인을 특정해 놓고 먼저 고등학생 복동이를 취조했다.

“솔직히 말해봐. 화장실에 휴지심 여태까지 몇 개나 올려놨어? “

“3개 ~4개?”



이번에는 중학생 복이를 추궁했다. 복이가 진범이 확실해 보였다.

“엄마가 뭐라 그러는 거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봐. 화장실에 휴지심 몇 개나 올려놨어?”

“가끔 하나씩? 나는 올려두지는 않고...피라미드 쌓는 걸 좋아하는데...”

화장실에 가면 안 나오더니 피라미드 쌓기를 하고 있었구나. 그래 피라미드 쌓기가 힘들긴 힘들지.


큰 아이들의 대답이 영 시원찮다. 혹시 몰라 꼬마들에게 물었으나 아이들은 휴지심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 꼬마들은 키가 작다. 눈높이가 다른 꼬마들은 윗동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선반 위의 휴지심을 보고선 신기해했다. “우와!”라고 했다.


그럼 설마 설마 남편이 그 많은 휴지심을 쌓았을까?

‘남편 설마 아니지? 여보? ’

범인은 남편이었다.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애들 학교 준비물로 필요할까 봐. ”

그랬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남편이었던 것이다. 가끔 아이들의 준비물을 챙겨야 했던 남편이었다. 네 명의 아이들은 돌아가며 준비물을 요구했다. 한 해 건너 돌멩이를 주으러 다녔다. 그림을 그릴만한 넓은 돌은 잘 없었다. 가을에는 낙엽은 주으러 다녔다. 빈 병을 찾을 때도 있었다. 찾을 때는 늘 없었다. 휴지심도 늘 그랬다. 종이 박스도 그랬다. 남편의 투철한 준비 정신이 휴지심을 옮겼던 것이다. 아이들은 다 컸는데, 이제 학교에서도 만들기를 잘 안 하는데 그건 몰랐나 보다.


괜찮다, 휴지심을 모으면 종이 재활용으로 한꺼번에 버리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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