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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핍니다

by 눈항아리

작은 노력으로 꽃을 피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작은 노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식물을 잘 키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언니는 화분에 세이지를 심었습니다. 화분에서 그렇게 꽃을 잘 피웁니다. 추우면 들여놓고 따뜻한 바람 쐬라고 내놓고 물도 주고 돌봐줍니다. 저 보다 늦게 심었지만 언니네 세이지 화분은 꽃을 주렁주렁 매달았습니다. 부럽습니다.


오랫동안 꽃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요. 제 세이지를 보시겠습니까. 키가 절대 안 자랍니다. 심지어 제가 언니보다 더 일찍 심었습니다. 그것도 세이지가 잘 자라던 곳에 심었지요.

마당의 세이지 봄날에 심다


그 잘 자라던 세이지는 어쨌을까요. 세이지는 절대 죽은 것은 아니고 저의 무지가 뽑아버렸습니다. 뿌리째 말입니다. 식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래봤자 몇 해 전입니다. (지금도 식물을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해 살이, 두해 살이, 뿌리로 살아있는 식물, 죽은 것 같은 가지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등의 신비한 자연 현상을 모르던 때였지요. 봄날에도 새싹이 올라오지 않는 비쩍 마른 나뭇가지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뽑아 버린 것입니다. 키가 1미터는 안 되어도 80센티미터 정도는 되었지요. 겨울을 보내며 당연히 월동을 못할 거라 생각했지요. 월동 뭐 이런 것을 알지 못하는 때였습니다. 그냥 보고 얼어 죽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보기와 달리 식물은 마른 줄기에 새싹을 피우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봄에 올라오는 것도 늦은 봄에 올라오는 싹도 있습니다. 기다림이 싹을 틔운다는 말이 꼭 맞습니다. 모르면 기다려 볼 것이지 그것을 뽑아버리다니요. 그렇게 뽑아버리고 난 빈 땅에는 애플민트와 국화가 뿌리를 뻗어 왔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올봄에 세이지 포트 5개를 심었던 겁니다.



세이지는 안 자랐습니다. 추워서 그런가 했습니다. 그래도 자라는 줄기가 하나 둘 생겼습니다. 마구 자라도 보아줄 걸 그랬나 봅니다. 웃자라는 것 같아 올라온 순을 키높이로 일정하게 잘라줬더니 아기가 되었습니다. 언니는 몸집을 불려 가고 있다며 조금 컸다고 말해줬습니다. 크고 있는 거 맞겠지요?


의심하지 않기로 합니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파릇파릇한 게 잘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 않습니까.


꽃은 언제든 핍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추운 시골집에 3년 전 영산홍을 바위 사이사이에 심었습니다. 무성한 잡초는 키가 얼마나 크는지 숲이 되어 우거졌습니다. 잡초의 생명력은 얼마나 대단한지 흙이 없는 바위 사이에서도 사람 키높이만큼 자랍니다. 바위 사이에는 예초기를 칠 수 없어 사람 손으로 일일이 잘라줘야 했습니다. 주말 농사와 더불어 바쁜 우리는 집 주위 풀도 정리해야 하지요. 그러나 돌틈에 있는 잡초에는 손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이 귀신같다던 남편의 말은 사람 키만큼 자란 집 앞의 풀을 보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거센 기세로 자라나는 풀숲에 파묻혀 다 말라 버렸다 생각했던 영산홍이 올봄에 꽃을 피웠습니다. 빨갛고 뾰족한 꽃봉오리를 새초롬하게 내밀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요.


토요일 하루를 온종일 혼자 흙이랑 나무랑 물과 씨름하며 돌틈에 심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빨강 꽃 하나만 올라온 것이 아니었지요. 심은 것 중 절반 정도가 올봄에 꽃을 피웠습니다. 흰색, 분홍색, 빨간색 영산홍이 잡초 사이에서 당당히 나무의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지만 스스로 자리를 잡고 살아있었습니다. 풀에 파묻혀 우리가 못 본 것일 뿐입니다.


마당의 아기 세이지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누런 떡잎 하나 생기지 않았습니다. 푸릇푸릇 제 존재를 뽐내고 있습니다. 뿌리를 바닥으로 쭉쭉 뻗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은 언제든 핍니다.


어떤 꽃이 필까 궁금합니다.



돌틈의 영산홍

돌틈의 영산홍

초록 우거진 봄쑥 사이에서

영롱한 붉은빛을 뽐내었다.

손으로 쑥 머리채를 잡고

낫으로 석석 베었다.

꽃이 안 보일까 봐.

꽃은 곧 말라 떨어지고

곧 풀숲에 자신을 가두었다.

여린 쑥의 머리채를 잡지 못하고

가위로 살살 잘랐다.

영산홍이 다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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