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대파, 상추, 옥수수, 코스모스 심다
주 6일 종일근무 부부 자영업자인 우리는 일요일만 농사일을 한다. 그러나 본업이든 부업이든 취미생활이든 농사는 우리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다. 농사에는 다 때가 있다. 농사와 계절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때맞춰 작물을 심어야 하니 시간에 쫓겨 애가 마를 지경이다.
밭에 씨만 뿌리면 무슨 작물이든 쑥쑥 자랄 것 같은데, 흙 파고 모종만 심으면 막 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심기 전에 할 일이 많다. 밭을 갈고, 퇴비를 뿌리고, 밭을 또 갈고, 고랑을 파고, 비닐을 씌울 것인지 제초매트를 씌울 것인지 맨손으로 풀을 맬 것인지 정해야 한다. 물관리는 또 어떠한가. 비닐이나 제초매트 아래 점적호스를 깔든, 물조리로 물을 나르든, 분수 호스를 깔든 물을 줘야 한다. 풀과 씨름이야 말해 무엇하랴.
일요일 하루 만에 300평 밭을 다 관리할 수 없다. 커다란 트랙터가 와서 그냥 휘익 갈아주고 가면 좋으련만, 농부 남편은 포슬포슬 가벼운 흙밭을 좋아한다. 무거운 기계가 자주 누르면 흙이 다져진다나 뭐라나. 그래서 최대한 가벼운 ‘미니’ 관리기로 밭을 간다. 흙이 아주 최고다. 흙이 다져지지 않으면 흙 사이 공간으로 작물의 뿌리가 쭉쭉 뻗어나간다는 이론이다. 뿌리가 잘 뻗어가면 작물이 잘 크는 건 당연하다. 무경운의 이점이다. 농사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남편의 말이니 그저 믿는다. 매년 트랙터로 휙 갈고 농사를 짓고 몇 년에 한 번씩 덤프트럭에 흙을 받아와 복토를 하고, 포클레인 같은 중장비가 밭에 들어가 흙을 꾹꾹 누르면 말짱 도루묵일 것 같기는 하다.
그렇다고 곡괭이 들고 모든 밭을 다 일굴 수는 없다. 가끔 그런 분들이 있기는 하다. 두릅밭에 가는 길, 구불구불 산길을 가다 깊은 산중에 있는 자그마한 밭에서 보았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두 분이 느긋하게 곡괭이질을 한다. 두 분의 제초 작업과 작은 밭의 삐뚜름한 고랑을 보아 무경운이 분명하다. 그러나 넓은 밭은 어림없다. 우리는 미니 관리기를 이용하고 때로 경운기도 쓴다.
작은 관리기로 밭을 갈려면 왕복 몇 번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갈고 또 갈고 왔다 갔다 혼자 밭을 간다. 물론 곡괭이보다는 빠르다. 남편은 밭 갈 시간이 없어서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일요일의 농부는 요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출근 전 매일 아침 30분, 1시간 짬을 내서 농사일을 한다.
일요일엔 그 좋은 농사일을 종일 할 수 있었다.
대파를 한 판 심었다. 대파를 심는 걸 보고 나도 밭으로 출동했다. 그의 사랑을 응원해 줘야 했다. (아니 우리의 농사를 함께하기 위해서다) 남편은 이미 골을 타고 대파 모종을 하나씩 꺼내 열을 맞춰놨다. 자를 대고 길이를 잰 막대기를 이용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파를 얼마나 일정한 간격으로 놓았는지 정확함이 돋보였다.
옥수수는 좀 많이 심었다. 350개나 심었다. 옥수수 알갱이를 두 개씩 넣었다. 비닐 멀칭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맨 밭에 심었다. 고랑을 안 만들었다. 풀이 날만하면 관리기로 한 번씩 지나가며 풀을 제거하기로 했다. 옥수수 한 줄에는 투명 컵으로 개별 온실을 만들었다. 한 줄만 투명 컵을 씌웠다. 싹이 빨리 나올까 안 나올까? 엄청난 온실 효과를 볼 것 같았다. 온실과 땅이 품은 온기에 힘입어 일주일 만에 발아가 되지 않을까? 부푼 마음을 품고 열심히 컵을 덮고 날아가지 않게 파묻었다. 그러나 과연 저 작은 옥수수 알갱이가 물은 마실 수 있을 것인가. 플라스틱 통 위로 물을 흠뻑 주고 있으나 깊이 박은 통 때문에 옥수수가 물을 잘 찾아 먹을지는 알 수 없다. 일주일 지나 보면 알 수 있겠지.
점심을 먹고 나는 곯아떨어졌다. 남편은 남은 밭에 퇴비를 뿌리고 관리기로 밭을 또 갈아엎었다.
낮잠 자고 일어나 슬금슬금 또 밭으로 나갔다. 꽃을 온실에 키우면 잘 자라지 않을까? 남편이 퇴비를 뿌리고 밭을 가는 동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또 작업 도구를 챙겨 나왔다. 이번에는 꽃밭을 일구었다. 꽃밭이 될 작은 풀밭에 자라는 뿌리 깊은 풀뿌리를 캐내느라 곡괭이질을 열심히 했다. 쇠스랑으로 풀을 대충 걸러내고 호미질을 했다. 장갑 낀 손으로 씨앗을 집을 수가 없어 복실이를 불렀다. 나는 호미질을 하고 복실이가 조막만 한 손가락으로 씨앗 두 개를 집어 주었다. 씨앗을 넣고 컵을 덮었다. 꽃밭은 처음이다. 코스모스와 바질을 심었다.
그가 나를 부른다.
꽃밭에 있는 나는 수박밭으로 불려 갔다. 수박 심을 밭에 미리 비닐을 씌우자고 한다. 둘이 힘을 합해 손으로 비닐을 씌우고 12개의 구멍을 뚫어놨다. 다음 주에는 수박을 심는다.
종일 일한 남편은 저녁밥을 먹고 바로 잠이 들었다.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대신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나흘이 지났는데도 골골하고 있다. 남편이 말하기를 꽃밭을 너무 열심히 만들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옥수수 싹이 안 나온다. 5일째 땅을 파보았다. 눈이 하나도 안 나왔다. 3년이나 된 씨앗은 발아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는 남편. 기다려도 싹이 안 나오면 다시 심어야 한다. 괜찮다. 옥수수는 늦게 심어도 된다. 가을 옥수수는 10월에도 수확을 한다.
옥수수 씨앗을 새로 주문했다. 포트에 모종을 만들기로 했다. 1000 립 대용량을 살까 비싸지만 70 립을 살까 고민하다 70 립 세 봉을 샀다.
옥수수 밭에 옥수수는 안 올라오고 풀이 마구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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