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꽂이는 즐거워

삽목의 즐거움

by 눈항아리


처음은 유카였다. 자바, 스킨답서스, 고무나무를 차례로 꺾었다. 잘라서 유리병에 물을 담고 꽂았다. 물꽂이라고 했다. 화분의 식물도 한 화분에서 10년을 살다 보면 탈출하고도 싶을 테다. 가끔은 너무나 그 열망이 화분에 넘치도록 줄기를 뻗어댄다. 그럼 할 수 없이 잘라줘야 했다. 그렇게 떨어져 나온 가지들은 투명한 유리 물병으로 들어갔다. 올록볼록 열리지 않는 창 틀에 둔 유리 물병 속 가녀린 나뭇가지들은 서향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머금고 천천히 뿌리를 내렸다. 뿌리가 얽히고설켜 유리병이 가득 차도록 무덤덤한 우리 부부는 유리병을 방치했다. 화분에 넣어 줘야지, 넣어 줘야지. 누구는 기다림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그렇게 기다림, 방치, 열망이 뒤섞여 흙에 적응해 살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물꽂이에서 뿌리가 왕성해진 아이들이 물병을 탈출해 흙 속에 들어가 천천히 자리를 잡는다. 새 순이 올라오면 아~ 이제 흙에 제법 뿌리를 내렸구나 한다. 이 과정을 삽목이라고 한단다. 우리말로 꺾꽂이다.


삽목의 과정은 자리 잡을 때까지 1년, 2년이 걸리기도 한다. 가장 길었던 건 자바였다. 가장 짧았던 것은 스킨답서스였다. 초봄에 시작해 뿌리가 나오고 새 잎이 나오는데 3개월이 채 안 걸렸다. 어제 화분에 심어줬다. 스킨은 뿌리를 그냥 흙에 나눠 심어도 잘 적응한다.



식물 번식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실내 화분뿐일까.


씨를 뿌려대던 남편이 영산홍 줄기를 잘라 화단에 좌르르 심었다. 낮은 삽목판에도 흙을 채우고 좌르르 심었다. 오호! 꺾꽂이를 저렇게 하는 거구나! 꽃모종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나는 데이지와 바질 새싹 올라온 것에 힘을 얻어 가게 화단을 돌아다니며 줄기를 채집하기 시작했다. 나무를 마구 꺾으며 다녔다. 남편이 제발 좀 기다리라고 해도 전지가위를 가지고 나가 싹둑 잘라왔다. 그리고 마구 재단했다. 남편이 쯧쯧 혀를 찼다. 부인의 만행에 기가 차겠지. 자른 가지를 다 버리고 하나의 줄기를 건지기도 했다. 식물의 뿌리가 어디에서 나올 줄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남편에게는 그게 보이나 보다.


천장까지 올라가고 다른 여러 화분까지 침투해 뿌리 증식을 하던 스킨답서스를 정리하던 날이었다. 남편은 뿌리와 줄기를 따라가며 가지런히 스킨을 정리했다. 서너 줄기만을 남겨두고 다른 줄기는 잘라버렸다. 잘라버린 기다란 스킨이 아까워 토막을 내 물꽂이를 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나다. 뿌리가 어디에서 나올 줄 모르니 그저 연필보다 한 마디 정도 크게 잘라 물에 꽂았다. 그런데 식물의 위아래가 어디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도 있었다. 나중에 뿌리가 나오고 새 잎이 나오고 나서야 내가 반대로 꽂은 것이 반절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킨답서스는 물에서도 잎이 잘 나와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식물의 위와 아래도 구분 못하는 나다. 그런 내가 나무줄기를 마구 잘라 오니 남편이 난감할 만도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도 물꽂이, 꺾꽂이에 꽂혔다. 하하.


그렇게 잘라온 식물은 모란, 능소화다. 모란씨가 여물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지만 까맣게 변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찾아보니 8월은 되어야 씨가 여문다고 했다. 그리고 그 씨를 키워 꽃을 볼 정도로 키우려면 7년 이상 걸린다고 했다. 그것을 언제 기다리겠는가. 그리하여 모란의 번식 방법을 찾아보니 접붙이가, 포기 나누기, 취목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삽목도 한다는 글귀를 한 줄 읽었다. 심봤다! 당장 모란을 잘라왔다. 구석에 자리를 못 잡고 있는 능소화도 잘라왔다. 모란은 물에 꽂았다가 바로 모종 포트에 심었다. 능소화는 플라스틱 물컵에 담가 물꽂이 명당자리에 뒀다.


남편은 잘라온 모란 가지 중 하나만 멋들어지게 포트에 심었다. 버려진 가지가 아까워 남편 몰래 포트에 흙을 붓고 물이 철철 넘치게 붓고 그냥 모란 줄기를 꽂아뒀다. 반그늘에 두라고 해서 남편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옮겨두었다. 하하.


식물은 당연히 씨앗으로 번식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제 몸을 나누어 번식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신기한 자연의 세계에 푹 빠졌다. 아이들에게 요즘 엄마, 아빠가 삽목을 열심히 한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러면서 꺾꽂이를 모르느냐고 하니 아무도 모른다. 꺾꽂이는 초등학교 때 배운 것 같은데 그걸 모르다니!

“엄마 그래서 꺾꽂이가 뭐야? ” 복동이가 물었다.

“꺾어서 꽂는 거야.” 나는 짧게 대답했다.

복동이는 꺾꽂이를 단번에 이해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력을 다해 살다 보니 시력이 무엇인지 잊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