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과자 코너에서 누군가 얼초를 고르는 날이면 아이들 넷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수제 초코 송이를 만들었다. 큰아이 복동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 때부터 나는 얼초 만들기에서 손을 떼었다. 내가 참견을 안 하는 놀이는 참 드문데 얼초 만들기는 참으로 쉽게 아이들에게 전권을 넘겼다.
3남 1녀, 저희들끼리 놀면서 얼초를 만들 때만큼 협동과 분업이 잘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얼초는 고난도 만들기다. 뜨거운 물을 사용해야 하므로 안전이 우선 되어야 한다. 큰 아이에게 뜨거운 물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자람을 가늠할 수 있다. 내가 전적으로 발을 빼면서 큰 아이들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었다. 업무 분담과 재료 배분은 평소와 다르게 조용한 가운데 진행된다. 초콜릿을 만든다는 기대감으로 누구 하나 대장의 말씀을 거스르는 사람은 없다. 제자리에 차분하게 앉아서 시작한다. 초코 튜브로 된 펜은 세 개, 사람은 넷. 어느 색을 누가 먼저 사용할 것인지 정한다. 한 번씩 돌아가고 나면 순서가 엉망이 되고 어느 순간 튜브의 작은 입구가 누군가의 입에 매달려 있지만 얼초를 하면서 초코를 먹겠다고 피 터지게 싸우는 일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얼려서 먹는 진짜 초코 과자가 냉동실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튜브에 남아있는 걸 쪽쪽 빨아먹지 않아도 곧 제 손으로 만든 얼룩이 초코 송이를 맛볼 수 있다.
튜브에 들어있는 초콜릿의 양은 적다. 그러나 몰드에 양껏 짜 넣어도 모자라는 법이 없다. 과자도 양은 많지 않으나 남는다. 아이들은 만들기를 다 하고 나면 남은 과자를 나눠 먹는다. 양이 적다고 투정을 부리는 사람은 없다. 작은 얼초의 힘이다.
복실이와 달복이가 얼초를 만들었다. 중학생 복이와 고등학생 복동이는 얼초를 만든다는데 저희들 방에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 복동이를 불러 초코 펜 중탕을 부탁하고 나서야 꼬마 둘의 초콜릿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다 만들고 나면 아이들은 늘 물었었다.
“엄마 초콜릿 과자 언제 다 만들어져요?”
나는 늘 초콜릿은 다음 날에 완성된다고 말했다. 무슨 못난 심뽀였는지 초콜릿 한두 개 먹는 게 뭔 대수라고 그 재밌는 걸 못 먹게 했을까. 신나게 만들고 맛나게 먹는 게 재미라는 걸 나도 더 크고 나서야 배운다.
어느 날부터 큰 아이들은 나에게 묻지 않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복실이가 묻고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설명서와 시간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제법 영리해진 복실이는 나에게 묻지 않는다. 냉동실과 냉장실도 구분할 줄 안다. 복실이가 냉동실에 얼초를 갖다 넣었다. 그리고 나는 잊었으나 복실이는 기다렸다. 핸드폰이 알람이 울리니 복실이가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다다다 뛰어갔다. 그제야 아이가 얼초 완성 알람을 맞춘 걸 알았다. 똑똑해진 복실이다. 설명서에는 냉동실에 넣고 15분만 기다리면 초콜릿이 다 굳는다고 되어 있다.
즐거움과 달콤함, 기대와 기다림이 아이들의 조막만 한 손에서 버무려졌다. 달복이와 복실이는 완성된 초콜릿 과자를 들고 와 가족 수 대로 나눈다. 안 만든 복이도, 조금 도와준 복동이도, 집 밖에 있는 남편에게도 모두 차례가 돌아간다. 나도 얼려서 먹는 초콜릿 과자를 2개나 받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