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가 자란다. 장맛비가 온다고 들판은 한껏 들떠있다. 낮은 먹구름이 깔렸다. 초록 벼가 한들거리는 논에서 점점이 하얀 백로가 아침을 먹는다. 한 마리, 두 마리가 아니다. 단체로 관광을 오셨다. 열댓 마리는 더 되어 보인다. 단체로 온 백로들은 띄엄띄엄 서 있다. 전깃줄에 앉은 참새에 익숙한 우리는 백로들이 따로따로 떨어져 밥 먹는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크고 길고 흰 새는 너 나 할 것 없이 아침 찬을 찾기 위해 목을 쭉 뻗고 있다.
백로는 시골에 와 살면서 친숙한 새가 됐다. 벼가 자라는 동안 논에서 한두 마리는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여러 마리를 한번에 목격하는 건 처음이다. 아이들은 등굣길에 만나는 커다란 흰 새를 보고 묻곤 했다. “엄마 쟤네는 목이 왜 그래? ” 가게 근처, 하다못해 산골 집에서 보는 새들도 백로처럼 목이 긴 새는 없다.
우리는 논길 옆으로 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백로 한 마리가 우리와 나란히 날았다.
“엄마 새가 날아!”
새가 우리를 조금 앞질러 간다. 너른 들판을 가로지르는 새는 막힘이 없는 공간을 가른다. 하얗고 커다란 날개를 쭉 펼치고 바람을 타면서 난다. 활공! 그것의 의미는 새가 날개를 치지 않고 바람을 가르는 모습을 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백로의 활공은 독수리처럼 거세지도 제비처럼 성급하지도 않다.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의 힘찬 활공에 우아함을 더했다. 그리고 느리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우리와 높이가 비슷하다. 우리는 달리며 순백의 긴 날개를 펼친 백로를 위에서 내려다본다. 나는 새의 등에 올라타 들판을 가로지르며 뻥 뚫린 들녘의 신선한 바람을 쐰다. 백로와 함께 느긋하고 여유롭다.
“엄마 새가 하얀 종이비행기 같아.”
복실이도 백로의 비행을 쭉 보고 있었다.
주택가의 새는 전깃줄이나 높은 나무에 앉아 있는데 들판의 새는 달라도 뭔가 다르다. 높이가 다르다. 사람이 무섭지 않은가? 거대한 차가 무섭지 않은가? 다른 새가 공격하지는 않을까? 겁이 없거나 천적이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일 테다. 백로보다 큰 새가 없어서 그런 걸까? 참새는 한 마리가 날아오르면 경계태세로 빠르게 전환하며 한꺼번에 후르르 전부 날아오르는데, 백로는 친구 새가 날든 밥을 먹든 전혀 신경을 안 쓰고 꾸물거리며 제 할일 하느라 정신이 없다.
큰 걱정 없는(겉으로는 없어 보이는) 커다랗고 길고 느린 그네들의 너른 날갯짓을 보며 나도 잠시 쉬었다. 운전을 쉰 건 절대 아니다. 운전대는 꼭 잡고 달리면서 그 와중에도 쉴 수 있다니! 나는 백로의 옆과 뒤에서 차를 평행으로 달리며 아침의 시름과 바쁨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 닥칠 정신없이 긴 하루 일과에 접어들기 전 들썩이는 마음을 다독였다. 푸른 들판이라는 초록 바탕의 마음에 하얀 쉼표 하나를 찍어 놓았다. 안전장치, 보험 하나를 마음 속에 저장해 둔 것 같았다.
시골길을 달리는 아침 출근길, 나의 번잡한 마음속에 백로의 아름다운 날갯짓을 담았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은 쉼을 준다. 바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준다. 아이들과 함께 시골의 풍경을 담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짧은 순간을 포착하는 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멈출 수 없다. 나의 험하고 지루한 일상을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종일 내 마음속에선 하얀 종이비행기를 닮은 백로의 활공 장면이 재생되었다.
이런 삶의 순간, 즐거움을 글로 나눌 수 있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