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테리어 대신 고추테리어>
플랜테리어는 플랜트와 인테리어의 조합이다. 나는 마당에 고추 화분을 키운다. 고추테리어! 내가 만든 말이다. 고추테리어는 고추와 인테리어의 조합이다.
마당 앞 대파의 계절은 갔다. 부직포 화분에 심었던 대파를 뿌리까지 뽑아 먹고 고추를 심었다. 흙에 상토를 섞고 부숙 퇴비를 조금 섞었다. 부직포 화분에 고추 심기는 3년째 계속되고 있다.
처음엔 어머님 집 마당에 고추 화분을 놓아줄 요량으로 시작했다. 첫해 몇 장의 부직포 화분을 샀다. 집 베란다 부직포 화분에는 딸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토마토를 옮겨 키웠고, 비닐하우스 부직포 화분에는 오이와 토마토를 키웠다. 복실이의 토마토는 천장까지 키를 키워가며 마구 자라났다. 열매가 몇 개 안 열린 게 흠이었다. 관리자는 복실이와 나였다.비닐하우스의 부직포 화분에선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어머님 마당의 고추도 주렁주렁 열렸다.비닐하우스, 어머님 댁의 식물 관리는 남편의 몫이다. 내 방 앞 나의 마당에 심은 고추는 늘 열매가 작았다. 첫해에는 새끼손가락 보다 작았다. 지난해에는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했다. 그래도 가끔 반찬에 고명으로 넣기 좋았다.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것도 누가 관리하느냐에 따라 결실이 다른 것 같다.
내가 관리하면 식물이 아담해지고 웃자라거나 열매가 안 열린다. 남편이 키우면 무럭무럭 자란다. 관심의 차이겠지? 지난해 날이 푹푹 찌던 여름 날 부직포 화분 속 고추가 다 말랐다. 나는 내 방과 가게를 왔다 갔다 하면서도 그냥 지나쳤다. 낮에는 물을 주면 안 되니 저녁에 줘야겠다고 생각만 했다. 밖에 나갔다 온 남편이 고추 화분을 보고 화를 냈다. 애를 왜 물을 안 주냐고 마구 열불을 냈다. 남편이 물을 주자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고추는 금방 생기를 되찾았다.
누군가 그랬다. 좁은 화분에 왜 고추를 하나만 키우냐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 마디 했다. 관상용으로 키우냐고. 아닌데요, 반찬 할 때 따먹으려고 키우는 거거든요?
그런데 맞는 것 같다. 오며 가며 보려고 키우는 것도 맞는 것 같다. 작은 고추는 내가 지나갈 때마다 반겨준다. 작은 꽃 하얀 봉오리를 보여주고 얼마나 귀여움을 떠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주인 의식이 없는 것 같다.
꼭 내가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내 방 앞에 있으니 내 고추가 확실하다. 물을 안 줘 축 쳐져 있으면 남편이 나에게 나무라는 걸 봐선 내 고추가 확실하다. 그 의무감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닌가 보다. 3년째 되던 어느 초여름 날, 마당의 고추가 꽃을 피웠다. 앙증맞은 하얀 꽃봉오리를 보고 내 고추에게 정성 어린 관심을 쏟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심은 이렇게 한 순간 오기도 하나 보다.
마당 한가운데를 떡 차지하고 있는 부직포 화분을 밀었다. 화분 아래 나무판자, 나무판자 아래 바퀴를 달았다. 나무판자는 파이프 위에 올렸다. 남편은 파이프 용접 술을 펼쳐 바닥 파이프 양쪽에 고춧대도 달아 놓았다. 화분에 담긴 흙이 무겁지만 잘 밀린다. 하하. 이런 게 관리지. 담벼락까지 밀었다. 좁은 마당이 훤해졌다.
“자기야 그런데 어머님 댁 고추는 큰데 왜 내 마당의 고추는 작을까?”
“햇빛 영향도 있고...”
“햇빛? 우리 고추도 마당에서 햇빛을 종일 쐬는데?”
“담 밑에 두면 그늘이 지잖아.”
‘당장 담벼락에서 끌고 와 마당 중앙으로 옮겨야겠다. ’
“물 영향도 있고...”
‘그래 이제부턴 열심히 줘야겠어. 그래 결심했어.‘
“늦게 심은 영향도 있겠지? 어머님 댁엔 2주 일찍 심었으니까. ”
‘그런데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역시나 작았던 내 마당의 고추 열매. 올해는 잘 키울 수 있을까? 그게 뭐든 다 해주겠어!’
부직포 화분 속 고추는 이제 화분 흙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는다는 건 키가 자랐다는 건 아니다. 심을 때의 키와 별 차이가 없다. 자리를 잡았다는 건 조금 건강해 보인다는 것일 뿐이다.
어제 고추의 첫 열매를 땄다. 작은 키에 달린 작은 고추 열매를! 김치찌개를 끓이는데 고춧가루가 똑떨어졌고 초록 고명을 올리면 좋을 것 같았다.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고추, 꼭지를 따고 물에 씻어 가위로 송송 썰어 보글보글 끓는 찌개에 넣었다.
고추가 내게 기쁨을 준다면서? 그 아이를 먹었다. 그 아담하고 작고 예쁜 열매를 먹었다. 하하. 고추테리어의 장점이다. 마음이 아프면 절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