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지켜주자

<플랜테리어 대신 고추테리어>

by 눈항아리
플랜테리어는 플랜트와 인테리어의 조합. 고추테리어는 고추와 인테리어의 조합으로 제가 만든 말입니다.

<플랜테리어 대신 고추테리어>는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한 그루의 이야기 입니다.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이레/ 295쪽


나는 고추가 아름답게 느껴졌나 보다. 그래서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글에 담고 싶었나 보다.

키 작은 초록 풀이 무어 볼 게 있다고 예쁜가. 그저 내가 돌보기로 했으니 마음이 가는 것이다. 마당을 오가며 자꾸 보니 예쁜 것이다. 그런데 뜯어보니 정말 예쁘다.

30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은 녀석. 나는 고추와 마주 앉아 10분을 함께 있는 것도 힘들었다. 태양은 뜨겁고 강렬하다. 그 태양을 이기는 작은 고추는 더 강해 보인다. 나는 강인한 아름다움을 닮고 싶은가 보다. 작은 키, 연약한 이파리가 세상을 이고 버티고 있다. 내 나이 얼추 마흔, 그 아이의 나이 이제 한 달이 채 안 되었는데. 장하다.

그저 버티기인 줄만 알았다. 심은 사람이 마당 한가운데 두었으니 발 없는 식물이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발이 있다면 그 아이는 벌써 그늘로 도망갔을까? ​


바람이 부니 고추가 손짓을 했다. 춤을 추었다. 펭귄의 손 같이 작고 귀여운 초록 잎을 위아래로 흔들며 즐거워했다. 파드득 거리는 고 작은 것이 내뿜는 매력, 여유로운 몸짓에 매료된다.

해가 하늘 가장 높은 곳에 떠 있는 시간까지도 스쳐 지나가며 보고만 있었다. 물조리 한 번 들 새가 없었다. 파란 물조리가 눈앞에 보이는데... 저것을 수돗가로 가지고 가서... 마음만 굴뚝같고... ​주방 냄비에 물을 가득 담아와 천천히 부어 주었다. 물을 머금은 고추는 더욱 생기가 돌았다. 남편이 고추가 이제 푸릇푸릇하다며 자리를 제대로 잡은 것 같다고 했다. 그게 다 내가 바쁜 와중에도 물을 줘서 그런 거라고 하하.

관심을 가지고 잘해주면 고추가 잘 클 것 같았다. 그래서 땡볕에 잠시 쪼그리고 앉아 고추의 하단부, 뿌리에서 가까운 줄기 아랫부분의 곁순을 모조리 제거해 주었다. 고추 농사를 짓는 5년 차 주말 농부인 나, 곁순 제거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여보! 내가 고추 줄기 아래 곁순 다 없애 줬어요. 잘했지요?”


고추가 뿌리를 뻗어가고 있는데 그걸 다 제거하면 어떡하냐고 남편에게 구박만 받았다. 그래도 팔랑거리는 손, 본 줄기에서 나온 커다란 이파리는 하나도 안 건드렸다, 뭐. 곁순에서 나오는 잎이라도 광합성할 초록이 많이 필요한 시기인가 보다. 미안하다, 고추야. 나는 잘해준다고 그런 것인데... 그 귀한 작은 곁순을 잘라 데쳐서 무쳐 먹을까 된장국에 넣어 먹을까 고심을 했더랬다. 나 잘했다고 기념사진도 찰칵 찍었더랬다.

과한 관심이 독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물만 잘 주자. 그런데 집에서 식물을 키우다 보면 (아주 예전의 일이다) 물을 많이 줘서 죽는 식물도 있었다. 나의 고추는 얼마 만에 한 번씩 물을 줘야 할까? 흙이 마르면? 부직포화분은 배수가 너무 잘 되어 늘 말라있는 것 같다. 그럼 아침저녁으로? 고추를 지탱하고 있는 흙을 만져봐야겠다. 고추를 알고, 그 아이의 환경을 잘 알아야 잘 돌볼 수 있다. 나의 섣부른 판단이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그 아이가 좋아할 거야. 그런 추측성 행동을 하지 말자. 그럼 과묵한 그 아이에게 물어봐야 하나? 어쩌나.


어쩌긴 공부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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