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굳이 고추인가

<고추테리어>

by 눈항아리

바람과 함께 춤추는 그 아이를 보면 자유로워 보인다. 나도 따라서 한들바람에 몸을 맡기고 싶다.


화분의 흙은 축축했다. 물을 머금은 거뭇한 흙 색깔을 보고 알았다. 남편이 먼저 출근해 물을 줬구나. 나는 내 고추 화분이라고 하지만 그이에게는 자신의 고추 화분일 테다. 주인이 누구인들 어떠하랴. 고추나무는 마당에 있고 마당을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정을 줄 수 있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런 고추 화분인데 나는 왜 굳이 그 아이를 택한 것일까.


왜 굳에 화분 속 고추인가? 밭에 100그루의 고추가 있고 큰 나무 작은 나무가 산마다 들마다 나무가 천지인데.


좁은 틀 속에서 작고 조그맣고 존재감이 없으면서도, 제자리에서 소리 없이 본분을 다하고 있어서, 그런 나와 너무도 닮아서, 그런 나도 그 아이처럼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어서? 나도 강하다고 뻐기고 싶어서? 그런 나도 때로 여유를 만끽하고 싶다 말하고 싶어서?


하다못해 출근길에 보는 서쪽의 험난하고 거대한 백두대간, 하얀 풍차가 빼곡히 하늘까지 솟아있는 대관령 줄기라도 눈에 들어왔으면 좋았을 텐데, 왜 하필 작고 작은 고추 녀석인지.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자주 보아서 그렇다. 가까이 있으니 옆에서 조근조근 마음을 나누고 싶은 친근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름다움은 그다음이다. 내가 바쁠 때 앞치마 휘날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아무런 사심 없이 보아주는 녀석이라 내 마음을 더욱 잘 알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라 그건 건지도 모른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 내 옆에 있어 주어서.


나는 무던히도 힘겹게 삶 속에서 의미를 찾아대는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이 오면 추위와 무관심 속에 말라죽을 한해살이 나무 한 그루에게 그리도 여러 가지를 의미를 구하는 걸 보면. 메마르고 궁색한 삶 속에도 때때로 작은 아름다움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지도 모른다. 나는 괜찮다!



*고추는 사실 한해살이 나무가 아니다. 온대지방인 우리나라에서는 한해살이 풀이지만 열대지방에서는 2미터 이상 자라는 것이 일반적인 다년생 나무이다. 내가 굳이 나무라고 칭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비닐하우스에서도 3미터의 키로 키우는 고추가 있고, 심지어는 바깥, 노지에서도 고추를 3미터로 키우는 대단한 농부 님들이 있다.


고추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더 자랄 수 있다. 한계를 정하는 것은 바로 ‘나’다. 나는 고추의 커다란 가능성을 닮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고추테리어는 고추와 인테리어의 조합입니다. 제가 만들어 쓰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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