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해야 하고 지각은 면해야 하고

by 눈항아리

바쁜 아침 고등학생 아들이 방에서 안 나온다. 무려 책상에 앉아있다. 학교 갈 시간이 다가오는데 갈 준비를 안 한다. 어젯밤 발표준비를 하다 언제 잠들었는지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는데 컴퓨터에 잡혀있다. PPT를 마저 마무리해야 한단다.


나는 시간을 알리고, 뒤이어 복실이가 시간을 알리고, 복이는 형은 왜 학교 갈 준비를 안 하느냐고 그런다. 나는 아이의 의자 뒤에 서서 저장을 하면서 하라고 훈수를 두고, 남편은 아이의 뒤에서 천천히 마무리하라고 다그친다. 곱슬머리가 이리 눌리고 저리 눌리고 안경만 집어 쓰고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출발 시간은 벌써 10분 전에 지났다. 아침밥은 건너뛴다고 했다. 아침밥이 무언가 지각 각이다.


손이 필요 없던 큰 아이가 멈춰 버리니 아침이 멈춘 것 같다. 아이의 가방을 뒤져 물통을 꺼냈다. 거품질을 하고 여러 번 헹궜다. 얼음과 물을 담아 다시 가방에 넣어줬다. 평소에는 내 손목이 아파 물통 뚜껑까지 열어 놓는 아들인데. 셋째에게 형의 양말을 찾아달라고 했다. 교복은... 어제 분명 빨아 놓았는데... 중학교 교복뿐이다. 교복이 없다니!


“교복을 안 내놓으면 엄마가 옷을 만들어낼 수는 없어.”


교복이 대체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가방에 박아 놓았는지 어쨌는지 찾아낼 시간조차 없다. 어젯밤 퇴근 후 옷이란 옷은 모두 세탁을 한 후였으니 교복을 감춘 장본인은 복동이가 분명하다. 나는 바쁜 와중에도 잔소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아이는 받아들일 정신조차 없었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세탁 바구니를 뒤진다. 자신이 오밤중에 벗어놓은 땀에 절어 냄새나는 교복을 그냥 목과 팔에 껴넣었다.


달복이가 꺼내놓은 양말은 차에 가서 신는다며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맨발로 신발을 신었다. 둘째 복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늘 그러는 복이의 모습은 그러려니 한다. 우리 첫째 복동이가 시간에 쫓겨 그렇게 뛰쳐나가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시험이 다가오며 공부량이 늘어나고 압박감은 커지고 수행도 해야 하고 정신은 몽롱하고 체력은 비실비실 시간은 촉박하다. 기말 시험의 긴장감이 온 집안에 휘몰아치고 있다. 복동이는 그 와중에도 차에 가면서 감자를 먹겠다고 했다. 감자 하나를 비닐팩에 고이 싸서 아이 손에 들려주었다.


그 와중에도 잊지 않고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는 우리 아들이다. ‘잘 다녀와!’




아이가 큰다고 손이 안 가는 게 아닌가 보다. 꼬마가 된 아들을 다시 키우는 기분이었다. 고등학생 1학년 꼬마 아들.


평생 부모.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이는 커도 나는 늘 엄마다.


숙제는 잘해서 냈는지, 발표는 잘했는지 내내 걱정이었다. 아무도 없는 교문을 혼자 달려 들어갔다는데 중고등학교를 통틀어 처음 지각을 해 보는 아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종일 축 쳐져 있진 않을까. 남편은 학교에 가면서 차 안에서도 문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한글 프로그램과 노트북, 아이패드 사용 등을 알아봤다. 부부가 쌍으로 종일 큰 아들 걱정을 했다. 결론은 ‘주말에 게임 즐길 시간에 미리미리 좀 하지 그랬냐?’였다. 자업자득.


어제는 저녁을 핫도그로 먹고 밤늦게까지 학원에 있는 아들을 위해 손수 삶은 삼계탕 한 마리를 준비했었다. 아이는 10시가 깜깜한 밤에 집에 와 영계 한 마리를 맛있게도 뜯어먹었다. 너무 양 많은 걸 먹여서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든 걸까. 야식은 조금만 먹여야겠다. 밥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다니는 걸 보면 맘이 영 안 좋다. 그래서 자꾸 밤에 먹는 밥을 챙기게 된다.


학원에서 돌아온 복동이는 흥분 상태였다. 남편은 자신이 종일 배운 바를 아들에게 전수했다. 아들은 지각을 면하지는 못했지만 세 번까지 봐준다는 규칙이 있어 무사 통과하였다고 했다. 다행이다. 아들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교문에서 교실까지 몇 분이 걸리더냐?

2분. 28분까지는 도착해야 해. 29분에 도착하면 가방을 버리고 뛰면 될 것 같아.

가방 버리고 뛰어가는 애들이 있어?

아니, 내 가방이 좀 무거우니까, 시뮬레이션을 좀 짜봤어.

그럼 가방은 어쩌고?

조례 끝나고 가지러 나오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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