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시험 보고 아들이 울었다

by 눈항아리


아들이 왈칵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행입니다. 카톡에서 흘린 눈물이라서.


기말 시험이 한창인 고등학생 아들은 요즘 꼴이 말이 아닙니다. 시험 압박감이 심한 탓에 아이는 화장실과 친구를 먹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벗하며 지냅니다. 시험은 일곱 과목, 월화수목금 5일을 봅니다. 하루에 몰아서 봤다면 좀 덜했을까요. 몰아서 봤다면 하루에 죽도록 힘들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힘든 건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봄날의 중간고사는 비염까지 대단해서 폭풍 콧물을 흘리며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선생님이 화장지를 통째로 건네줄 정도였으니, 기말고사는 알레르기 철은 지나 콧물 요인은 사라져 좀 더 좋은 조건에서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황하고, 긴장하고, 덤벙거리고, 상황이 늘 여의치 않은 건 늘 똑같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아들은 문자를 보냅니다. 제가 보지 않는 카톡으로 보냅니다. 심지어 며칠 후에 확인되는 톡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고 연락이 없는 아들바라기를 하고 있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카톡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아들이 카톡으로 시험 결과를 알려주거든요. 무슨 실수를 했는지 이실직고합니다. “그래서 성적이 잘 안 나왔어요. ” 이 말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매일 다르게 말합니다.


그런데 어제와 같은 날은 처음입니다.


과학 시험인 줄 알고 과학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영어 시험이었다고 합니다.


영어 공부를 해보겠다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영어 학원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아이입니다. 오후에는 영어 시험 대비를 위해 밤까지 쭉 영어학원에서 공부를 하다 온다고 했지요. 하루 만에 영어 시험 대비가 될지 의문이지만 마지막까지 열심히 공부를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는가 봅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안 찍고 다 풀었어요.”


조삼모사를 안 해서 뿌듯한 아들입니다. ‘조삼모사’ 아시지요? 조금 모르면 삼 번, 아예 모르면 사 번. 시험 보는 기간 퇴근길에는 찍기 신공을 동생들에게 전수해 주곤 하던 큰 아이입니다. 저도 아들이 안 찍고 풀었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습니다.


“아들 내일 시험 과목은 과학이야? 과학은 100점 맞겠다? 공부를 두 배로 했겠는데?”


“아니야, 나는 하루 지나면 다 잊어버린단 말이야. 빨리 공부해야겠다.”


오늘은 시험이 끝나면 무슨 에피소드를 전해줄지 궁금합니다.




저도 바라는 엄마입니다. 100점 좋아합니다. 상장 너무 좋아합니다. 그런데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아이 성적에 어떻게 태연할 수 있냐고요? 아이 스스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과하다 보니 성적은 2순위가 되었습니다. 1순위는 내 아이의 건강입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닙니다. 시험이 끝나야 행복합니다.


저는 아이의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단단한 엄마입니다. 포기가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포기라는 단어는 절대 쓸 수 없습니다.


시험이 오면 단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 외에는 크게 할 일이 없습니다. 밥 챙겨주는 것 외에는 말입니다.



밥때가 되면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고 학원에 가곤 하는 아들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밥 준비 해놨어. 먹고 가.”


공부는요? 알아서 혼자 헤쳐나가야지요. 밥 떠먹여주듯 공부를 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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