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정 부럽다
아이에게 바랐다. 큰 사람이 되어라. 어른들이 지어주신 이름자 하나하나 크고 높은 의미가 들어가 있으니 큰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아이가 넷이나 되는데도 첫째에 이어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내 아이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현실을 조금 깨닫게 되자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크게 없다며 내 마음의 크기를 줄였다. 그 후에는 욕심을 팍팍 줄여 내 아이가 한 분야의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고, 지금은 마음을 180도로 바꾸었다. 기본만 하고 살자. 지금은 마음을 내려놓았다.
아이야 큰 사람이 안 되어도 좋다. 험난한 높은 산을 굽이굽이 지나가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큰아이 이름의 의미가 높고 높다. 높은 사람이 되라는 의미도 되겠지만, 아들이 높은 산, 험준한 산을 굽이돌아 힘겹게 걸을 것만 같아 나 혼자 걱정의 산을 태산만큼 쌓기도 한다. 이제는 커다란 나의 바람을 마음 속으로 꾹꾹 눌러 집어넣었다.
아이야, 바다와 같이 커다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라.
아이야,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아이야, 나누는 사람이 되어라.
나는 많이 안 바란다.
그렇다고 작은 점수에 감사하라는 것은 아닌데 아이는 작은 점수에도 기뻐하며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으로 온 점수를 포용했다.
그리고 시험의 끝남을 기뻐하였다. 중고등을 통틀어 처음으로 밀려 쓰지 않은 것을 자축하고 친구들과 즐거움을 나누기 바빴다. 피시방에서 저녁이 다 되도록 기쁨을 나누었다. 게임 수혈을 하면 생기가 돈다. 신기하게도. 주말 내내 게임을 하면서 더욱 혈기왕성해졌다.
기말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다음 주말에는 친구들과 물놀이를 간다고 했다. 시험 전 한 달부터 놀러 가기를 선언했었다. 아이는 도수 들어간 수경을 새로 맞춘다고 안경점에 다녀왔다. 그런 준비 정신으로 공부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놀러 갈 때 누구 차를 얻어 타고 갈 것인가 고민을 한다. 놀러 갈 계획은 즐겁기만 하다. 지난주에는 시험이라고 다 죽어가더니... 아이들은 회복 탄력성이 뛰어나다. 뛰어나도 너무 뛰어난 것이 아닌가.
기말시험에 이어 곧 방학이 도래한다. 고등학생 아들은 초등학생처럼 방학을 기다린다.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방학인 듯한 기분이다. 아직 2주나 남았는데. 아들은 방학이 좋단다. 남들은 방학에 모자란 공부를 채운다는데 우리 고등학생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허허. 7월 언제는 수시 박람회를 간다고 하는데, 수시로 놀러 다닐 궁리를 하는 것 같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간단다. 나도 기차를 타고 놀러 가고 싶다.
나도 놀러 가고 싶어서 이렇게 장황한 글을 쓰는가? 아들을 따라가고 싶어서? 아니다. 아들이 잘 놀아서 기특하다. 시험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튀어 올랐다 가라앉았다 제자리로 신속히 돌아와 줘서 고맙다. 그 말을 하고 싶다.(마음 속 하고 싶은 말이 많고 많지만, 욕심을 내면 내 속만 쓰리므로)
높고 높은 이름을 가진 아들아 엄마는 네가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바란다. 바란다. 마음의 소리... 대통령이 되기라도, 교수, 의사, 회장님 되기를 바란다, 바란다... ) 그냥 놀기만 좋아하는 아들이 한심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맞다, 맞다, 마음의 소리...) 그래도 계획을 세워 뭔가를 하니 기특해서 그런다. 기특한 건 기특한 거다. (계획의 방향이 공부 쪽이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래야 성적표를 받아보고도 태연할 수 있다. 남의 성적표를 받아보고 열불을 내봤자 나만 손해다. 성적을 감당하는 건 아들의 몫인데. 내 점 수인가? 아 속 쓰리다. 네 점수가 왜 내 점수 같으냐. 이런, 아들과 한 몸인 것 같은 곤란한 마음 같으니.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며,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을 가진 우리 아들, 엄마는 네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기특하다. 그리고 그런 네가 진정 부럽다.
“아들 밥 먹고 가.”
잘 노는 아들도 밥은 챙겨 먹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