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간 아이는 보드게임 방에

by 눈항아리

야밤에 고등학생 아들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원 앞으로 데리러 갔다. 전화를 안 받는다. 평소와 같다. 학원이 끝나야 전화를 받지. 금방 전화가 걸려왔다. “빨리 내려와라. 엄마 잠 와.” 10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엄마 나 시내야. 왜 출발하면서 전화 안 했어?”

‘그런 너는 왜 전화를 안 했냐? 학원에서 공부는 안 하고 웬 시내? 너 어디냐 대체. ’

시내는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차도 사람도 많은 곳이다. 초보 운전인 내가 과연 그곳에서 아들을 태울 수 있을 것인가. 깜깜한 밤 운전도 걱정된다. 그러나 아들은 데리러 가야 하고 난감하다.

‘가면 간다고 미리 연락을 해야지. 행선지를 미리 밝히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아니냐? 나는 놀러 간다고 하면 못 가게 할 속 좁은 엄마 아니다. 왜 말을 못 해? 응?’ 마음에선 잔소리가 폭풍처럼 쏟아져 나온다. 전화기를 계속 붙잡고 있으면 열불이 더 나고 폭발할 것 같았다.

깜빡했다는 아이는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다. 노는데 왜 그렇게 일찍 왔느냐는 원망이 섞인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전해진다. (나쁜 자식)

부글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우선 아이가 있는 곳을 검색했다. 역시 밤 운전, 차를 세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가게 마무리 정리를 하는 남편에게 아이들 싣고 오라고 떠넘기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당장 아이와 함께 있는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일 수도 있다.

밤 10시에 학원으로 태우러 갔는데 아이가 놀러 가고 없다. 큰일이 아닌가? 집으로 운전해 가며 결전의 준비를 했다. 마음을 굳게 먹고 ‘학원을 끊어!‘와 같은 강력한 말 무기를 마구 생성했다. (전투 준비 게이지 상승 중~)

남편과 집으로 온 복동이 우리 큰 아들은 왜 멀쩡할까? 나는 폭발 직전인데. 남편도 멀쩡하다. 나는 다다다 쏟아내야 하는데. 학원에 간다고 해놓고 학원에는 없고, 대신 놀러 갔다 온 아들, 나랑 너랑 우리 모두 한판 싸움판 화마에 휩싸여 까맣게 그을릴 때까지 뒹굴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나만 심각했다. 사태의 진지함을 파악하지 못하는 가족들이 이상했다.

아들은 학원 수업을 일찍 끝내고 기말고사 끝난 기념으로 학원 친구들이랑 보드게임방에 놀러 갔단다. 피시방, 노래방에 이어 이제는 보드게임 방이다. 어릴 때는 방방이를 타러 다니더니 방을 아주 좋아한다. 그 방을 깡그리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부글부글 삶으면 좋겠다. 후~

하루가 지나자 마음속에서 전쟁의 불씨는 사그라들었다. 사태를 키우는 건 내 마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이 끝났고 기쁨을 나누었을 뿐인데. 축하 파티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것이 걱정이다. 아들은 축제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방학에 뭐 할 거야? ”복동이에게 물었다.

“수학 학원 가야 해서 바쁠 것 같아. ” 복동이가 대답했다.

수학 학원에 꿀단지가 있는 게 분명하다. 학원에는 놀 친구들이 있다. 선생님도 놀아준다. 좋겠다. 놀 사람이 많아서. 아이들은 학원에 공부만 하러 가는 건 아니다. 학원도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는 사회이므로.

“너 수학 점수는 잘 나왔어?”

“영어 점수는? ”

엄마는 속이 다 탄다, 아들아. ‘학원을 그냥 끊자’는 말이 목구멍에서 솟아오른다. 그렇지만 꾹 참았다. 괜히 돈 가지고 유세하는 것 같아서.


막 첫째의 영어 학원에서 월 결제와 상담을 마치고 오는 길, 한숨을 쉬며 영어 점수 얘기를 하는 중학생 둘째와 마주 앉게 되었다. 시험 성적이 나쁘게 나오면 엄마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에 구구절절 변명을 해야 하는가 보다. 그렇다면 앞으로, 당장 내일부터, 학습 계획표를 작성해 제출해라. 방학 기간 동안 어떻게 만회를 할 것인가 등을 물었다. 아들은 계획은 없으며 영어가 싫다고 했다. 싫은 과목이 있을 수도 있고 하나 정도는 실수로 점수가 안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하였다. 중학생까지만 놀다 형처럼 고등학생 되면 영어 학원에 다니면 된단다.

학원이 공부를 시켜주는 곳이기는 하다만... 네가 스스로 공부를 안 하면 말짱 도루묵이란다. (형을 봐라.)

아들의 학원 얘기에 또 열불이 나서 혼자 성질을 내며 마감 청소를 미뤄두고 야밤에 아들 둘을 앉혀두고 공부 얘기를 했다. 해라. 싫다. 이렇게 해라. 싫다. 그럼 어쩔 것이냐. 안 하고 싶다. 하! 그럼 피시방을 다니지 말아라. 그건 또 다른 문제란다.

가만 듣고 있던 첫째가 끼어들었다.

“엄마 강제로 시키면 하고 싶지 않아요. 공부는 스스로 해야지. 동기 부여가 되어야 공부를 하는 거죠. ”

“그래서! 너는 공부를 한다고 학원에 갔으면 공부를 해야지! 점수가! 학원 가는 놈이나 안 가는 놈이나 똑같아! ”

그렇다. 첫째도 둘째도 영어 점수가 치명적이다. 반타작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중 고등생이 점수도 똑같다.

“나도 열심히 한다고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걸 어떡해... ”

그렇게 말하면 나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를 은근 지적하는 것 같다. 나는 그래도 반타작은 아니었다고!

시험의 여파는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큰아이 친구의 엄마는 전화를 했다. “복동이 수학 어디 다녀요? 우리 애가 복동이도 다니는 데 다니고 싶다고 해서.”

인간성 하나는 끝내주는 첫째 아이, 중학교 때 친구가 복동이 다니는 학원으로 다니고 싶다고 했단다. 우리 아이들은 친구 따라 학원 다닌다. 그 친구도 기말고사를 보고 정신 해탈의 경지에 있다고 했다.

나도 해탈의 경지를 향해 정진하고 있다.

애미의 속을 늬들이 알까?

아들들 영어 공부를 강제로 시킬 수는 없고, 내가 이번 기회에 영어를 한다 해! 나는 영어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왜 내가? 공부를 하는 거지? 인생은 어디로 갈지 종잡을 수 없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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