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치는 첫 모의고사를 ‘3모’라고 한다.
‘3모’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이 지난 겨울 방학부터 달고 다닌 말이다. 6월에 치는 모의고사는 ‘6모’라고 한단다. 아이들의 말 줄임 솜씨는 탁월하다. 말솜씨만 탁월하면 뭘 하나. 시험을 제대로 봐야지. 아들은 시험을 보며 저도모르게 꿀잠을 잤다고 했다.
어제는 고등학생이 된 아들의 첫 모의고사였다. 시험이면 늘 긴장감이 하늘을 찌르는 복동이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발현된다. 늦은 밤까지 화장실을 들락날락한다.
시험 땐 괜찮았어? 밀려 쓰지는 않았어? 화장실 말은 않고, 밀려 쓴 건 나중에 가봐야 안다고 했다. 문제는 늘 일어나는 일상적인 허둥댐이 아니었다.
국어 시간 지문이 길어 잠이 들었다고 했다. 40분을 잤다고 한다. 영어 시간 듣기 2번을 분명 듣고 있었는데 필름이 끊겼다고 한다. 무슨 약을 먹은 것은 아닐까 의심이 되었다.
“뭐 먹었어?”
“점심밥이 너무 맛있었어. 밥버거가 나왔거든. “
아이는 시험 종료 10분 전에 치는 종소리에 깨어나 부랴부랴 번호를 찍었다고 한다.
정말 밥을 너무 맛있게 먹은 것일까. 식곤증?
시험 점수가 안 나올 것 같아 미리 선수를 치는 것일까.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해 뇌가 시험을 차단해 버린 것일까.
알레르기 약이 시험 시간에 맞춰 잠을 불러온 것일까.
새로운 병은 아닐까? 기면증 같은 병은 갑자기 수면에 빠져든다고 하던데.
시험이 늘 긴장된다고 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아이는 공부에 영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저 공부 포기의 수순일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다.
신기한 것은 아이는 앉은 자세로 자고 일어났고 일어나니 아주 개운했다고 한다.
공부를 하겠다고 영어 학원까지 새로 등록해서 다니고 있는 녀석이, 시험 시간에 꿀잠을 잤다고 했다. 학원비를 대주고 학원 셔틀 기사를 하는 입장의 나는 속이 터져라 화가 났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시험 시간에 잠을 잘 수 있다는 말인가.
늦은 밤 아이를 학원에서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옆에 앉은 아이는 변명과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등급이 어쩌고 점수가 어쩌고 줄줄이 수능 박사 나셨다. 잠을 잘 자 얼굴만은 매우 밝아 보였다. 그러나 긴장감이 심해 밤까지 속이 안 좋다는 아이였다. 보통 시험 날이 지나면 멀쩡해진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말을 아꼈다.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차를 몰고 깜깜한 길을 운전해 오면서 조용히 생각했다. 기면증에 관한 것도 그때 생각이 났다.
‘시험에 대한 긴장은 네가 평생 풀어야 할 숙제와 같은 거야. 시험 시간에 잠이 든 건 정말 심각한 증상 같다. 전문가에게 가 봐야 할까? 아들. 너 괜찮은 거지? ’
의사 선생님에게 가면 웃지 않을까? 혹시 시험을 보면서 자는 게 정상은 아니겠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비정상적인 게 많으니까.
‘아들 공부가 다는 아니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 그래 맞아. 그래도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지. ’ 아이 앞에서는 근엄하게 말한다.
잠을 자다니... 대체 무슨 정신으로...
(릴렉스, 릴렉스)
속으로는 열불이 난다.